


똑, 똑.
더없이 정중한 노크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한 가지 문제는, 누군가 찾아올 만한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막 잠에 들락말락한 상태였던 학생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사방이 어둡다. 점호가 끝난 지도 한참 시간이 지났다. 사감 선생님일지도 몰라. 머릿속으로 노크 소리의 주인을 추측하며 발을 옮긴다. 단순하게 생긴 잠금을 푸는 데에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 이 밤에…….”
무슨 일이냐고.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문장을 채 끝맺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문 바깥에 서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뜻 사람과 닮은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무너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학생의 시선이 일렁거리는 실루엣을 따라 흐르다가, 곧 까맣게 물들어간다.
현관에 쓰러져 있던 학생을 발견한 것은 아침 점호를 하러 왔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최대한 이 사건을 키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숙사생 사이에는 한 가지 소문이 퍼져나갔다. 기숙사를 찾아오는 어떤 유령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 유령을 목격했던 학생이 주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이 소소하게 퍼져나가는 정도였던 것이, 하루하루 날이 지날 때마다 목격자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학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내용이었다. 밤이 늦은 시간이면 누군가 기숙사 문에 노크를 시작한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밤새 소리가 이어진다. 문을 열어주면 문 밖에 서 있는 유령의 형체가 보인다. 목격의 내용이 대부분 비슷비슷했기에 소문은 순식간에 끓어올라 학교 전체의 흥미로운 소문거리가 되어주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특별한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는 그 소문마저도 힘을 잃고 어느새 흐지부지 사라져갔다. 소문을 종식시키려는 선생님들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유령의 목격담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령을 봤다는 사람이 더 나오지 않자, 아이들은 한 때의 유행은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새로운 소문거리에 몰입했다. 예를 들면 매점에 새로 나온 피자빵이라거나.
좀 더 파고들어보면 목격담이 나오지 않게 된 이유 또한 단순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유일한 목격자가 된 한 사람, 윤사랑이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똑, 똑.
노크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완전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일정하게 문을 두드리는 그 소리는 분명히 정중해서 더욱 소름이 끼친다. 물론 같은 반 아이들과도 거의 말을 섞지 않는 사랑마저도 소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데도 공포는 발끝에 남아있다. 그것이 걸음을 느려지게 만들었다. 잠깐만 문을 열면 되는 거야. 그러면 금방 사라져버릴 거야.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까. 다짐을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그 앞엔 들은 대로, 사람이 아닌 것이 서 있다. 아니, 단순히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된다는 것처럼 온통 위화감뿐인 존재였다. 헛구역질이 밀려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잠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꼭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사라지지 않는 건지 의아한 것도 잠시, 그것이 손을 뻗어왔다. 손. 그렇게 인식한 자신이 어이없을 정도로 흐릿한 그림자였다. 부스스한 분홍색 곱슬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또 소름끼쳐서.
다음날 현관에서 깨어나는 꼴이 된 건 사랑이었다. 근육통으로 욱신거리는 몸을 끌고 학교에 나가면서도 사랑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관심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다음 날이면 또 다른 목격자가 제 목격담을 떠들어 댈 게 틀림없었으니까.
그리고 문제의 다음날, 노크소리가 울린 것은 사랑의 방이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사랑은 첫 날을 제외하곤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나 이어지는 소리들을 무시하고 그냥 잠들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표정이 별로 안 좋네. 잠 제대로 못 잤어?”
같은 반 아이에게서 불쑥 건네진 질문에 사랑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대로 표정이 어둡다. 옆에서 다른 친구가 말을 건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뭐 하러 말을 걸어. 뭐 좋은 소리를 듣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 눈빛이 냉정했다. 사랑은 평소처럼 짜증스레 대꾸하는 대신 질문으로 대답했다. 사실 짜증을 낼 기운도 없었다.
“유령이 계속 찾아온다면 뭐 때문일 거 같아?”
“유령?”
요즘 안 나타난다는 그거? 소문에는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왜? ……그냥. 대답하기 언짢다는 표정도 평소보다는 훨씬 얌전했다. 웬일로 말을 받아주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학생은 잠시 말을 고른다. 아무렇게나 대답하다가 또 짜증이라도 낼까봐 걱정스러웠던 탓이었다.
“아직 다 못한 일이 남아있는 거 아닐까?”
아직 다 못한 일. 사랑은 이불을 덮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야 미련이 남았으니 유령이 된 거겠지. 하지만 자신은 그 미련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턱 끝까지 이불을 올려 덮는다. 침대 아래로 무언가가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온 몸이 무겁기만 했다. 설령 지금 죽어버린다 해도 미련 같은 게 있을 리 없는데…….
어두운 곳이었다.
자신은 계속 달리고 있었고, 검은 것이 온 몸에 얽혀 있었다. 아무리 떨쳐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어쩐지 계속 눈물이 나고 만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아프다. 더 달리고 싶지 않아. 체념이 등 뒤에 매달린다.
똑, 똑.
그리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을 때는 이불을 쥐느라 손끝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랑은 홀린 것처럼 문을 향해 걸었다. 질질 끄는 발소리가 들린다. 잠금을 풀고 문을 열었다. 그것이 서 있다. 여전히 울렁거릴 정도로 튀어 오르는 존재감이었다. 이번에는 손을 뻗지 않는다. 한 사람과 한 무언가가 현관에 멀뚱히 마주본 채 서 있었다. 대신 손짓한다. 사랑은 얼떨결에 그 손짓을 따라 침대 위로 올랐다. 그것은 사랑이 이불을 덮는 것까지 지켜본다.
“왜 찾아오는 거야?”
잊어버린 게 있어? 대답은 없다. 정말 바보 같은 소리지만, 그것이 언뜻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난 있는 것 같아. 여전히 대답은 없다. 사랑은 개의치 않는다.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아. 그게 원래 내 거였던 것처럼. 이상하지? 한 번 종알거리기 시작한 입은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너는 뭘 남겨둔 걸까. 의문이 여기에 남았다.
그것은 이불 위를 토닥여주기 시작한다. 그게 언뜻 다정하게까지 느껴졌다. 유령은 문을 열어주고 나면 그냥 사라져버린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아이들이 나누던 소문을 떠올렸다.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본다. 공포가 옅어지고, 눈을 마주친 것도 같았다. 분명 예쁜 레몬색. 내일은 그렇게 말해줘야겠다, 그런 다짐이 잠결에 흩어져간다.
눈을 떴을 땐, 어디에도 유령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