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의 과학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우주를 정복했다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이제 사람의 항법 없이도 멀리 나갔다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자율주행이라 했던가.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100에 한없이 가까운 귀환율을 보며, 우주인들이 다져온 기술력을 믿는 것에 조금 더 무게를 두게 된다. 그리고 여기 이바노프는 그 귀환율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사람인듯 무인운전 우주선에 몸을 맡기고 있다. 꽤 먼 우주를 돌아오는 길.
혼자인 터라 조금은 외롭다. 우주선 안에 구비된 많은 것들이 그의 무료함을 덜어줄 수 있으나 굳이 꺼내지 않았다. 보드게임이라 해도 혼자로는 아쉽다. 노래를 들어도 같이 불러줄 이가 없다. 책을 읽어도 감상을 혼자만의 것으로 둬야 한다. 물론 우주선에 탑재된 인격체와 나누면 되지 않냐는 말을 그의 연인이 했던 적도 있다. 그는 언제나 그걸 나누고 싶은 건 당신뿐이라는 말로 답하곤 했다.
시간이 가고 있다. 고향에 닿기까지 앞으로 하루가 채 남지 않았다. 동시에 되짚어 본다. 우주라는 시공간의 넓이는 인간은 물론, 제아무리 대단한 프로그램일지라도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걸 행운이라고 봐야 할까? 누군가의 행로와 겹친다. 출처를 모르는 우주선이 밖을 유영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겠지. 아마 이대로 잠시 스치고 영원히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진귀한 장면인 것은 맞기에 이바노프는 밖을 한참 바라본다. 그러다 조금 기묘하다고 느낀다. 다시 살피니 멀어져야 할 우주선이 오히려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한 시각 정보와 경고 안내음이 다시 한번 그의 지각을 일깨운다.
경고, 경고.
몇 번의 음성 알림이 어지럽게 울리더니 완전히 같은 궤도에 올라 옆자리를 차지한다. 가까이 와보니 알겠다. 이미 낡고 오래된 기체가 분명하다. 움직이는 동력마저 불안정한지 빛이 점멸하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쿵! 큰 소리가 난다. 무언가 파열되는 식은 아니다. 안정적으로 결합되었다는 안내가 이어진다. 틀림없는 건 이쪽의 합의 없이도 멋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자잘한 기체의 소음이 오늘따라 예민하게 귀를 자극한다.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충분한 대비를 한다. 최악의 경우에 예비된 방법들이 몇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곳으로 가봐도 허무하게도 아무도 없다. 이상하게 우주선의 조명은 조도를 낮춘다. 평소에는 자기 전에나 봤을 어둑함. 아주 오랜만에 지구의 저녁과 밤을 떠올렸다. 구체적이게도 빛의 속도로 1년 전, 익숙한 무게의 10월 31일. 눈앞의 공간에서 뜻 모를 그리움이 그곳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날 사무국에서는 곧 떠나는 우주선을 배웅할 준비는 물론이고 시즌을 충분히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해두었다. 곳곳에는 잭오랜턴의 머리와 가짜 해골 따위를 걸어두고 우주에 나가는 것에 장난치지 못하도록 달콤한 것들을 한가득 쌓아둔 것이다. 개성에 따라 다양한 코스튬을 정복마냥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평소대로 모습을 한두 사람이 있다. 율리야와 이바노프가 그렇다. 딱히 어떤 이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닌 사탕이나 초콜릿 정도만 그들 손에는 들려있었다. 누구든 손에 마구 쥐여준 모양이다.
“초콜릿은 좋아합니까?”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라는 말 대신
“당신이 주는 거라면요.”
같은 대답이 나온다.
주변에서 들었다면 둘중 하나가 대답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서로에게는 익숙하다. 이어서 작게 벌린 입에 알맞은 크기의 초콜릿을 넣어줬으니까. 입에서 초콜릿이 다 녹으면 그는 드라마처럼 대사를 읇는다. 한사람의 기억에만 남은 모습이 재상영 중이기에.
어쩌면 우주에 있는 동안 우리는 유령과 같을지도 몰라요. 여기 남은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돌아오길 바라는 일을 일상으로 여기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우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금 약속해요. 내년 이맘때에도 함께 있어요.
‘이 지구에 말이죠.’
두 사람은 차가운 우주로 온기를 들고 나선다.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기억에서 돌아오면, 유령의 이름을 찾아내거나 새로이 붙일 필요가 없음을 안다. 고개를 반투명해진 쪽으로 돌리면 익숙한 얼굴이다. 사고 없이 무탈한 얼굴. 어쩐지 서늘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닿지 않음이 분명한데도, 살아있는 육체에 텅 빈 존재를 하나 쌓는다. 멀리서 보아야 함께 있는 것 같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결합되었던 유령선이 멀어진다. 소리가 날 법도 한데 고요하다. 유령이 나지막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바노프, 무게가 느껴지시나요?’
언제나 우주선을 지구 밖으로 보내기 위해 많은 과학 기술이 사용된다. 물론 그뿐이 아니다. 사고로 길을 잃은 좌표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배가되는 기술이 필요하다. 본인의 의지가 없이도 당신을 부르는 중력같은 힘을 실어 떠밀어낸다. 귀향이라는 건 때로는 그런 형태인 것이다.
물론 당신이 직접 힘을 내어 잡은 것도 있다. 반투명하고 당신에게 속삭이는 말조차 쉬이 들리지 않는 비과학의 절정인 유령. 누군가의 혼. 누군가의 기억. 누군가의 사랑과 함께하고자 한다. 같이 집으로 가는 길에 붙잡아 두고자 당신을 부른다. 지구로 돌아가는 한 장의 티켓에 이름을 적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