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왼쪽.PNG
헤더.PNG
캐스트.PNG
캐치프레이즈.PNG

“넌 빠른 시일 내에 굿이라도 해라.”

 

툭. 접이식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유영의 머리 위로 종이 뭉치를 올라왔다. 유영은 불쾌한 기색 없이 종이 뭉치를 쥐고 있는 형사의 손을 밀어내며 앞머리를 다시 매만졌다. 언제 구매했는지도 모를 접이식 의자는 앞부분의 가죽이 헤져있고 쿠션감이 사라져 오래 앉아있는 것 자체로도 고문이었다. 유영이 허리를 쭉 펴자, 등허리를 따라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강력반 수사실의 잡다한 소음에 척추가 내지른 비명은 금방 묻혔다. 길게 땋은 머리와 보라색 생활 한복 차림, 남들의 앉은키보다 한 뼘 더 큰 유영이었지만 수사실의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각자의 사건·사고를 처리하는데 바쁘기도 했거니와 이 구역 형사들에게 유영은 단골손님 비슷한 사람이었다.

 

“몇 번 가봤는데, 쫓겨났어요.”

 

“송도에 용왕신 모시는 무당이 있다던데.”

 

“용왕이라… 용하대요?”

 

아무렴. 동자도 아니고 용왕을 모신다잖아. 유영의 맞은 편에 앉은 형사는 성의 없이 대답을 마치고는 컴퓨터 화면에 펼쳐놓은 문서들을 확인했다. 10월에 들어 시신 도난 사건만 벌써 14건이다. 개중 열 건은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 접수됐다. 긴 연휴를 맞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가족의 시신을 도둑맞은 것도 모자라 천하의 불효자식으로 인터넷에서 먹지 않아도 될 욕까지 먹고 있었다. 때맞춰 SNS에선 범죄조직이 시체를 빼돌려 인육장사를 한다는 시대에 맞지 않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댔다. 운이 좋게 이를 면한 사람들이 경비원을 고용해 무덤을 지키자 이젠 영안실의 시신이 도둑맞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해당 병원 관계자와 경찰들이 범인 수색에 최선을 다했지만, 이 사건을 파고들수록 이상한 일뿐이었다. 영안실 구역 CCTV만 고장 났다거나, 마침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거나. 조직적으로 일으키는 일이 틀림없었으나 확실한 증거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 오늘 밤에 나랑 어디 좀 가자.”

 

“사탕이라도 얻으러 가시게요?”

 


 

“악취미.”

 

소아청소년과 병동의 복도는 어린 환자들을 위해 할로윈 가랜드가 장식되어 있었다. 비상등의 녹색 불빛에 주황색 호박은 거의 보라색에 가깝게 보였다. 유영의 보라색 한복은 검게 보여 한때 민트초코만큼 뜨거운 토론을 나누게 한 ‘드레스 색이 어떻게 보이느냐’ 문제처럼 느껴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잠입수사 하기 딱 좋은 날.”

 

“할로윈이잖아요. 누가 이날 영안실에 가요.”

 

“너? 그리고 나.”

 

유영이 일하는 장례식장은 대학 병원 부지 가장 안쪽에 위치해서 차로 이동하는 게 훨씬 빨랐다. 이 고집스러운 형사는 경찰차가 바로 앞에 주차하면 잠입수사에 의미가 없다며 기어코 본관에서부터 걸어가자고 주장했다. 이해되지 않는 주장은 아니지만 유영은 고작  짜장면 두 그릇을 저녁으로 때우고, 3시간 내리 고문 의자에 앉아있어 걸을 기분이 아니었다.


 

음산하네···. 이 시간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형사는 공범자가 있을 거라며 나이트 근무 간호사들을 피해 비상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드문드문 비추는 빛마저 사라지고 조용한 층계에 두 명분의 발소리만 울렸다. 유영은 귀신을 본 적은 없었지만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할로윈이니 귀신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이었다. 그래, 저기 서 있는 사람처럼.

 

“어라.”   “쉿.”

 

출구 가까이에 웬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웃자란 화분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병원 보안요원의 옷을 입은 그는 벽을 향해 서 있었고 아직 유영과 형사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귀신일까요? 차라리 귀신인 편이 좋겠는데. 형사는 자켓 안쪽의 홀스터에 손을 얹고 소리를 죽여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조금씩 출구에 가까워지고 형사의 발이 발 매트에 닿은 순간 자동문의 불빛이 녹색으로 바뀌며 문이 열렸다. 동시에 화초 틈에서 튀어나온 보안요원이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거 귀신이야?!”  “아니. (허억) 아니겠죠….”

 

뛰는데 말 걸지 말라니까요. 남들의 두 배는 느린 유영은 형사에게 손을 붙잡혀 끌려가다시피 뛰었어야 했다. 요원은 비명에 가까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소란을 피웠지만 누군가 찾아온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주변은 도시의 소음, 풀벌레 소리, 평범한 공간에서 완전히 배제된 듯한 느낌을 줬다. 유영이 형사에게 의문을 표하려던 그때, 자동문이 열리며 둘을 안쪽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정면에는 빈 데스크가 보였고, 왼쪽에는 유영의 키만 한 거울이 보였다. 유영은 숨을 고르며 거울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야! 형사의 흥분한 외침이 멀어진다. 목과 어깨에 서늘하고 축축한 것이 휘감아 오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공포영화에서 거울 보는 거 아니랬는데.

 

 

유영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살피기 위해 몸을 일으켰으나 돌아온 건 머리 위 측에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이었다. 골을 흔드는 진동이 지나가서야 그는 주변을 더듬으며 자신이 있는 곳을 생각해 봤다. 낮은 천장과 네모난 공간… 사체 보관함 안이었다.  이곳에 시신을 안치시키는 건 자기 일이었으나 이렇게 빨리 눕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게 첫 느낌이었다. 방향을 틀기에 유영의 몸은 너무 길었고, 보관함 바깥에는 걸쇠가 있었다.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쳐도 문은 열리지 않을 거다. 유영은 차라리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아침 7시쯤 동료나 청소부가 들어올 테고, 소리를 내면 어떻게든 여길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범인이 갑작스레 자신을 꺼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라고 생각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잠시 쉬고 다시 하나, 둘, 셋. 문을 여닫는 소리가 두 번 들리고 발자국은 유영이 들어있는 보관함 앞에서 멈췄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유영의 머리맡에는 한 사람이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