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registered Stranger
작은 마을은 할로윈을 맞이해 집집마다 장식을 했다. 우스꽝스러운 호박 머리 허수아비, 다양한 표정의 잭오랜턴, 가짜 거미줄과 박쥐, 검은색과 주황색의 가랜드, 단풍 모형까지. 낮부터 아이들은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눌러 음정이 맞지 않는 목소리로 외쳤다. “Trick or treat!”
마린은 그날로 벌써 다섯 번째의 사탕 마술을 선보였다. 빈손을 보여주고는 상대의 귀 뒤에서 사탕을 꺼내는 아주 간단한 트릭이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굉장했다. 꺅꺅거리는 웃음이 한 블록을 넘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뿌듯하면서도 어딘가 쑥스러운 기분으로, 마린은 거실로 돌아온다.
“피곤하지 않아? 다음번에 오면 그냥 없는 척하지.”
펼친 신문 너머에서 카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럴 때 해보고 그러는 거죠. 손이 너무 굳었어요.”
대답 대신 음, 카인이 한 번 목을 울렸다. 내키진 않으나 만류하기도 마땅찮을 때의 버릇이었다. ‘그날’ 이후로 마술과 관련된 화제는 항상 이렇게 되었다. 마린은 카인의 곁에 허리를 내린다. 둘이 앉으면 딱 맞는 소파였다.
마린은 그 사고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고, 꽤나 들떴고, 부주의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조명 빛이 유난히 눈에 부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게 조명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어서, 그리고 마린을 향해 추락하고 있어서 그랬다는 건 카인이 말해주어서 알았다. 머리를 다친 충격으로 마린은 무척 오래, 아주 아팠다고 했다. 카인이 마법의 힘을 빌려야 했을 정도로.
원칙적으로 머글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건 금지되어 있으며, 원론적으로 머글들은 마법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런던을 떠나야만 했다. 마린의 ‘가짜’ 장례식이 치러진 후에, 카인을 잡으러 오러가 파견되기 전에.
마린은 많이 울었으나 분통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자신을 잃을 뻔한 카인이 어떤 얼굴로 이름을 불러왔는지 생각하면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삶을 어그러뜨리고 간 난폭한 운명 앞에서 평생의 꿈이니 직업이니 하는 것은 감히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그것들은 죄다 사소한 문제 같았다. (조금도 사소하지 않았음에도.)
“나한테는 안 해줘? 나도 장난 잘 칠 수 있는데.”
“……카인이 치는 장난은 너무 심하잖아요.”
“그러면 대접을 해줘야지.” 카인이 제 뺨을 톡톡 두드렸다.
빤히 보이는 기대를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에, 마린은 카인의 귀에서 또 사탕을 꺼내려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손이 떨렸다. 소매에서 사탕 무더기가 와르르 떨어졌다. 이런 실패는 몇 번이나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았다.
사탕을 주우려는 마린을 카인이 당겨 안았다. 시무룩하게 처진 눈썹을 못 본 척하며 입을 맞춰온다. 어떤 장난은 대접보다 다정했다.
어둑어둑해지자 할로윈 특집 영화가 방영을 시작했다. 헤일 오 위엔 감독의 작년 작품이 한창 상영 중이었다. 무덤에서 기어 나온 망자들이 그어어, 우어어, 괴성을 지르며 행진한다. 사람들의 비명을 배경 삼아 조촐한 할로윈 만찬-페퍼로니 피자와 코카콜라-을 먹었다.
“할로윈엔 죽은 사람들이 돌아온대요.”
“안 돌아와. 유령이라면 모를까.”
“유령 봤어요? 무섭게 생겼어요?”
“학교 다닐 때 종종 봤지. 그냥 인간 같아. 말도 하고 농담도 하고.”
카인의 마법 학교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마린의 관심은 가상의 영화보다 실존하는 유령으로 옮겨갔다. 마법사들은 죽으면 다 유령이 돼요? 그럼 카인도 죽으면 그렇게 되나. 웃길 것 같아요.
“다 유령이 되진 않아. 강한 미련이 있어야 한다더라. 나는…….”
“카인은요?”
“글쎄.” 카인이 마린의 손을 쥐고 몇 번 주물럭거렸다. 마지막 남은 생존자가 좀비가 된 연인에게 고백한다. ‘앞으로도 우린 함께일 거야. 사랑해.’
마린은 충동적으로 물었다.
“유령으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이번에 뻔한 기대를 하는 쪽은 마린이었다. 카인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마린을 바라봤다가, 강하게 손을 움켜쥐었다. ‘할로윈이 끝나면 망자들은 무덤으로 돌아가지. 그때도 당신의 손을 잡고 있을게.’
“돌아갈 생각 하지 마.”
질문을 던진 건 마린인데, 카인의 대답은 영화 속 인물을 겨냥하고 있었다. 악력이 강해 조금 아팠다. 손을 빼려고 하자 힘이 한층 강해졌다. ‘그날’ 이후로 금기시되는 건 마술뿐만이 아니었다. 카인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린은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전 죽지도 않았는데 어딜 돌아가요?”
“…….”
카인은 손을 놓지 않았고, 마린은 망설이다 한 팔을 뒤로 돌려 등을 쓸어주었다. 저 여기 있어요, 카인.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가?) 마침내 카인의 긴장이 풀릴 때까지, 둘은 꽤 오랜 시간을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마린의 꿈이다. 그날 밤은 더는 걸릴 것 없이 끝났으니까. 평소처럼 넓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으니까. 할로윈은 한참 전에 끝났으니까.
시계탑이 없는 마을이었다. 집에는 괘종시계가 없다. 그런데도 열두 번 종이 울렸다. 마린은 식은땀과 함께 눈을 번쩍 뜬다. 축축하게 젖은 몸이 금세 차가워졌다. 카인은 없다. 아니 이 집에는 그 누구도 없다.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거실에서 멈춘다. 발바닥이 따끔거려 잔뜩 움츠렸다.
똑똑, 불청객이 문을 두드린다. 장난도 대접도 요구하지 않는다. 꿈속의 마린은 깨닫는다. 문을 열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몇 번이고 연속해서 꿨었다. 깨고 나면 모조리 잊어버리는데, 항상 이렇게 되고 만다. 그러나 마린은 문을 열 것이다. 바람이 요란하게 운다. 망자의 비명처럼.
죽은 자가 돌아오는 할로윈. 장면이 열린다.


카인은 그 사고를 기억한다. 마린이 건넨 티켓 한 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 공연은 좀 힘을 썼거든요. 제법 괜찮을걸요? 카인은 마린이 허세를 부리고 싶을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을 알고 있다. 턱을 조금 들고, 시선은 위쪽으로 향하지만 반응이 궁금해 곁눈질한다. 기대할게, 라고 답했던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래? 짐짓 장난을 쳤던가.
카인도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고, 꽤나 들떴고, 부주의하게 지팡이를 두고 왔다. 서둘러서 그랬을 거다. (이유가 뭐였지? 꽃다발이 얼지 않게 하려고?) 조명 빛이 유난히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 조명 아래에 있는 마린 듀프레가,
첫 숨을 삼키고 객석을 ─카인을─ 보며 미소 짓는 쾅!
유리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 누군가의 절규.
다 유령이 되진 않아. 강한 미련이 있어야 한다더라. 유령으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돌아갈 생각 하지 마. 관에 누운 마린의 얼굴이 어찌나 초탈했던지 카인은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했다. 그가 사랑하는 남자는 멍청한 구석이 있어서, 분명 죽는 줄도 모르고 떠나버렸을 터였다. 그러니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부터 카인의 곁에 기웃거리는 마린 듀프레는 카인의 환영이거나, 그도 아니면 카인의 강한 미련이 낳은 결과일지 모른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카인은 좋았다. 마린의 ‘진짜’ 장례식이 치러진 후에, 조직의 배신자를 잡으러 오러가 파견되기 전에, 두 사람은 런던을 떠났다. 난데없이 사라져도 누구도 찾으러 오지 않을 사람들만 사는 구석진 마을을 전전한다. 네 번째 이사에서 카인은 마침내 적당한 집을 찾았다. 심약하고 병약한 이웃 사람. 가족도 친척도 아무도 없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린’은 눈을 크게 뜬 채로 깨어났다. 극심한 공포로 그의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카인, 내가, 내가 죽었어요.” 카인은 ‘마린’의 눈두덩을 손으로 쓸어 덮었다. 젖은 자색 눈이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너 안 죽었어.”
“아닌데. 내가, 나…… 내 몸이, 아닌…….”
할로윈이 끝나면 망자들은 무덤으로 돌아간다. 그때도 카인은 마린을 붙잡고 있을 것이다. 물을 소유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뚜껑이 닫힌 그릇 하나. 그릇의 모양은 무엇이든 좋다. 형태가 바뀐다 해도 그것은 물이니까.
“다 괜찮아. 날 믿어.”
“흑, ……헉…….”
이 말도 몇 번째의 반복이다.
“눈 감았다가 뜨면 전부 괜찮아질 거야.”
‘마린’은 순순히 사탕을 물었다. ‘마린’의 혀가 동그란 사탕을 휘감아 누른다. 진한 단맛이 날 것이다. 달콤함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결국 죄다 사소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겠지.
어떤 장난은 할로윈이 끝나고도 계속된다.
작은 마을은 할로윈이 끝나기 무섭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감돌았다. 붉은 산타 모자와 흰 수염을 단 허수아비, 다양한 표정의 요정 인형, 가짜 선물 상자와 루돌프, 붉은색과 녹색의 크리스마스 리스, 썰매 모형까지. 아이들은 음정이 맞지 않는 목소리로 캐롤을 불러댔다. “Merry Christmas!”
“연말이라 그런가. 이맘때는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에요.”
첫서리가 내리고 창문엔 성에가 꼈다. 부옇게 흐려진 유리창 너머로 거리를 바라보던 마린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트리를 들여뒀잖아.”
펼친 신문 너머에서 카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치만 이제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니…… 카인, 비웃지 말고요. 신문으로 가려도 다 보이거든요.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잖아요!”
“넌 항상 나보다 어릴 거야.” 카인이 유쾌하게 대꾸했다.
정말로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