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귀야행을 넘긴 이튿날. 헤일 오 위엔은 지금까지의 혈기가 증발하기라도 한 듯 부러 얌전히 굴었다. 모레에도 글피에도 죽음을 앞두고 심경이 변화한 노인처럼. 에리스는 우선 어떤 첨언도 없이 지켜보기를 택했다. 일주일 가량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식사 때 정도. 양쪽 다 소식가인데다 에리스의 수면 습관이 야행성에 가까워 짧게나마 밤 인사를 건네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밖의 시간 도안 헤일은 방에 틀어박힌 채 숨을 죽였다. 첫 사흘 에리스가 기어코 죽어 버렸는지 확인하려 방을 열자 짙은 어둠이 드리우며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합니다, 작업 중이라서요. 빛이 들어오면 곤란합니다. 어두운 밤 광원이라고는 손에 쥔 촛불뿐이라 에리스는 대답 대신 후 입김을 불어 초를 껐다.
“그렇다면야. 들어오세요.”
“암실?”
“맞습니다! 전 감독이니까요.”
압생트와 질투의 검푸른 녹색 빛깔이 드리워진 필름은 아직 정체를 숨긴 채였다. 빛을 맞기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작업 공정을 지켜보겠다는 요구를 헤일은 선선히 들어주었다. 겉보기 과정은 간소했다. 렌즈로 필름을 들여다보다가 자르고 붙이고, 한참 조용하다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했다. 손이 움직임을 멈추는 여백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장면을 이어붙이거나 자르면서 조립하리라. 작은 암실에 감독의 상상을 곁들이면 어둠은 밤하늘이, 책상은 배가, 그리고 바닥은 차고 짠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해안가로 변했다.
“당신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뚜껑을 열면 되나.”
“설마요! 제 상상을 엿보시려거든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영화로는 거짓말하지 않나요.”
“물론 합니다. 관객을 위해서 허황된 모순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게 바로 감독이란 직업이죠. 오직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가장 솔직한 거짓말이라고 할까요. 헤일은 뻔뻔하게 웃었지만 에리스의 입꼬리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그 후로는 닫힌 문과 마주쳐도 그대로 지나쳤다. 간사한 거짓말을 훼방 놓을까도 고민했으나 헤일을 다시 제 곁에 두기까지 겪은 일들을 따지면 최선의 작업물이 탄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완벽주의자 감독은 마음에 차는 영화를 만들려 몇 번이고 지루한 공정을 감내했다.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둬야 지름길을 달음박질해 돌아올 것이다.
이른 새벽 에리스는 눈을 떴다. 목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과거를 되풀이하는 악몽이 결말만은 변주를 곁들였다. 추락을 방조한 선택이 후회를 남겼거늘 깊이를 모르는 구덩이는 메아리를 빼앗은 채 침묵했다. 그리고 눈앞의 인물. 중절모에 선글라스, 타탄 체크 무늬 코트와 꽉 조인 넥타이. 별안간 엄습한 불안감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어디 가요?”
“잠시 산책이라도 나가려 했습니다만. 편찮아 보여서요.”
“그러니까 어디로.”
“같이 나가겠습니까?”
에리스는 대답 대신 헤일을 가볍게 밀어냈다. 도시에서 즐겨 입던 창파오 대신 처음 만날 때와 비슷한 옷을 걸친 이유는 아마도 변덕이다. 산 사람의 모든 행위에 의미가 따르지는 않으므로. 그러나 원점으로 돌아간 평범의 극치를 지금으로선 가만히 두고 보기 어려웠다. 상대의 선택에 맞춰 오랜만에 긴 코트를 걸치고 스카프를 맨 에리스는 마지막으로 베레모에 손을 뻗었다. 이제 두 사람 모두 영락없는 런던의 행인이었다.
헤일이 데려온 곳은 해안가였다. 도착하고선 몇 번씩 셔터를 누르며 갈매기나 정박한 배를 렌즈에 담았다. 감독의 상상이 현실에 치닫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효시였다.
“늘 지나다니는 곳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동틀 녘에는 처음 오거든요.”
“시간에 따라 빛의 각도와 색이 달라지죠.”
“정답~ 곧 일출이 보입니다. 그걸 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러나 수평선 위로 해가 뜰 즈음 헤일은 목에 카메라를 걸고 꿈적도 하지 않았다.
“뭐 해요?”
“빛을 맞고 있습니다.”
“당신이 뱀파이어라면 바로 타 죽었을 텐데.”
“바로 그겁니다. 죽지 않는지 실험하고 있어요.”
역광에 얼굴이 그늘지며 표정이 가려졌다. 반대편에 선 에리스의 미간으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봐요. 기껏 살려뒀더니 타 죽겠다고요? 또 내 앞에서?”
“어디까지나 실험입니다. 반증을 위해서. 믿고 싶거든요.”
“도박 때문에 날 부르지 마요. 당신이 죽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에리스 씨?”
“…….”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동행을 제안한 이유는, 오히려… 멀쩡하고 사람다운 면상을 보이려던 목적이었는데.”
항구의 기능을 상실한 외딴 부둣가에서 갈매기만 서글프게 울었다. 그날은 밤이 깊어도 식탁에서 서로 인사하지 않았다. 다시 잠들기 전 에리스는 생각했다. 저 사람이 과연 미안하다는 감정을 알기나 할지. 내가 괜한 사람을 살리지 않았는가. 그러다 추측일랑 관뒀다. 헤일 오 위엔의 속내는 알 바가 아니다. 내가 살리고 싶었다. 죽였다면 오늘 아침과 똑같은 꿈 속이나 잠에서 깨고서도 후회했겠지. 그래도 살아 있는 유령이 통제불능이라 통탄스러웠다. 여전히 공포에 매료된 감독은 죽고 싶은 것처럼 굴었다. 살렸기 때문에 목전에서 뻔뻔하게.
초저녁 에리스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문으로 자주빛 노을이 베일처럼 길게 드리웠다. 집안은 조용했다. 헤일은 작업 중인가? 요즘 그의 몸은 햇빛을 맞으면 이따금 연기가 솟거나 조직이 녹아내렸다. 창문을 꼼꼼히 막아둔 암실이 작업 공간인 동시에 수명을 늘리는 귀중한 벙커로 작동했다. 그 덕에 감독은 여전히 아침 해가 뜰 때 일어나 한낮에도 생활하며 달과 함께 잠들었다. 평소대로라면 문을 닫힌 채로 두었겠지만 연구자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각하며 손잡이를 밀어젖혔다. 안에는 돌돌 말린 필름이 번호가 붙여져 정리됐고 옆에는 편지 한 통이 놓였다. 헤일은 온데간데없이 단지 편지의 발신인으로 자리했다. 수취인은 에리스. 그리고 할리우드의 변호사였다. 저작권을 나누는 지루한 내용을 넘기자 마지막 장은 짧은 편지였다.
친애하는 에리스 씨에게.
지금까지 가을이면 초대해 주시어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때로군요. 머나먼 길로 나는 떠납니다. 당신에게 최후를 보이지 않음에 이기적으로 안도합니다.
돌이키지 못할 한 마디를 적을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저라고 마지막까지 상처만 남기다 떠나는 취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생의 종막에 남은 감정이 후회이고, 내가 죽음에 돌진하지 않았음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라요. 여전히 나는 죽음을 사랑하고 내가 맞이할 다음을 기대합니다만. 어쩌면 더 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날 아침에 들었습니다.
나는 죽음이 아닌 삶을 그리워합니다. 증표로 내 종국의 시선을 여기 담아 보냅니다. 이 필름은 영구히 녹턴 앨리의 에리스에게 귀속합니다.
영원을 담아. 헤일 오 위엔으로부터.
편지를 본 에리스는 곧이어 필름 통 옆면의 시계를 발견했다. 삶의 이유를 강탈당한 헤일은 바늘을 돌리지 못했으므로 진정한 유산은 바로 여기 있었다. 삶이 당연하며 응당히 누리려던 에리스에게 남겨진 도돌이표의 특권. 초대의 시작은 분명 항구의 아침에서다. 퍼즐이 맞춰졌다. 귀인은 동편에서 온단다. 해가 뜨는 방향에서.
“약았군, 위엔.”
어찌 거절하겠는가. 딸깍. 바늘이 거꾸로 돌고 자리에는 그림자 아닌 어둠만이 감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