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다~ 받아라!”
“너무 살살 던지는 거 아니냐구! 필살 초강속마파이어볼… 어택!”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작은 손에서 잽싸게 빠져나간 공이 바람을 갈랐다. 적당히 수평을 그렸어야 할 호선이 거진 직선이 되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과한 욕심을 담은 야구공이 가는 방향을 따라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우루루 뛰어갔다. 일직선으로 길게 난 주택가에 왁자한 아이들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마구잡이로 섞였다. 야, 저기로 가잖아! 더 빨리빨리! 떨어진다, 잡아 잡아. 하늘로 솟았던 흰 공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로를 예상해 뜀박질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던 그 때.
툭
“아.”
야속하게도 야구공이 담장을 넘어갔다. 보통 야구에서 담장을 넘는다는 건 팡파레를 울릴 호재였지만, 동네의 어린이 리그는 사정이 달랐다. 어떤 스포츠를 하든, 공이 담장을 넘어갔다는 건 귀찮음이 필히 동반되는 일의 전조이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부재중일지 모르는 집의 대문을 두드리고, 주인이 있다면 사죄와 함께 공을 찾아오는 일은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에 분명했다.
“야! 타이치, 니가 너무 세게 던져서 넘어갔잖아. 빨리 가져와!”
“힉, 그, 근데 여기… 무서운 아저씨네 집이잖아…”
“야아, 빨리, 빨리 가서 가져와…! 타이치~”
“참나. 뭐가 그렇게 무섭다는거야! 그까짓 할아방탱이…”
“우린 저~기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엇, 야! 기다려!”
쳇, 치사한 녀석들. 모퉁이를 향해 후다닥 뛰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타이치가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바로 하자 목재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명패에는 쿠도(工藤)라는 글자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다. 꿀꺽. 아주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대문을 하염없이 노려보던 타이치가 눈을 꼭 감고 대문을 쿵쿵 두드렸다. 공 좀 주워주세요! 쿵쿵쿵.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담이라도 넘어야 하나, 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 물러나면 물러날수록 높은 담장이 타이치를 향해 ‘넌 안 돼.’ 라고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시도라도 해볼까. 타이치는 뒤로, 뒤로, 뒤로, 맞은편 집의 담장이 등에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서 달려가서, 벽을 타고 매달리면 기어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런 막연한 생각에 자신감이 점차 차올랐다. 숨으로 고르고 발을 구르려던 찰나 드르륵, 대문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타이치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스윽, 탁. 스윽, 탁. 일정한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졌고, 곧이어 무거운 대문이 열렸다.
“아, 그게… 저기, 공…”
검은 기모노를 입은 집의 주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굳게 다물린 입. 그리고 날카로운 눈을 한층 더 날카롭게 보이는 안경. 그 위에 짙은 눈썹은 그 사이가 맞물릴 듯 자연히 찌푸려져 있었다. 타이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듣고도 무시하는지 대문 밖으로는 움직이지 않은 장신의 남자가 타이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리 오라느니, 공을 가져가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은 채 형형하게 푸른빛 눈을 빛내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히 기가 죽어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그럼에도 다리가 멋대로 움직여 한 발, 두 발, 쿠도 가(家)의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양손을 펼쳐 들었을 때, 톡, 높은 위치에서 떨어트린 야구공이 타이치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가져가라.”
“감, 사…”
합니다. 그 말이 닿기도 전에 대문이 타이치의 눈 앞에서 닫혔다. 그리고 다시 스윽, 탁. 스윽, 탁.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뭐, 뭐야!”
기분 나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씩씩 열을 내면서도 모퉁이를 향해 타이치는 뛰어갔다. 안도, 긴장, 사이로 두려움을 직접 마주했다는 용기에 대한 작열감이 은은하게 타올랐다. 이유 모를 뿌듯함. 혹은 미지와의 조우. 그 모든 걸 안고 친구들 사이에 위풍당당하게 야구공을 흔들어 보이는 타이치는 그날의 영웅이 되었다.
* * *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인연은 지나가는 새가 전해줬는지, 쓰레기통의 쥐가 전해줬는지 모를 소문으로 계속되었다. 아무도 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공이 담장 너머로 넘어간 게 타이치 어머니의 귀에 들어갔다! 주의와 함께 제대로 된 사죄를 전하고 오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떠안게 되었다. 예쁜 녹색 봉투에는 양갱이 들어있으니 절대로 봉투를 빙빙 휘두르며 가지 말 것을 스무 번은 듣고 나서야 입이 댓 발 나온 타이치가 다음 날 다시금 그 거대한 현관 앞에 섰다. ‘내가 왜 애들이랑 놀러가지도 못 하고 여기 와있어야 하냐고!’ 원망을 담은 작은 주먹이 쿵쿵쿵, 목제 현관을 두드렸다.
“저기요! 실례합니다아!”
흥. 콧방귀를 뀐 타이치가 양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전에 잔뜩 쪼그라진 모습을 보였던 게 이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발목께에서 녹색 봉투가 달랑거렸다. 순간 바람이 세게 타이치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처음 봤을 때의 내려보는 눈빛과 그를 가리지 못하던 안경, 그리고 기다란 지팡이가 떠오르자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 하나도 안 무서워! 입을 더욱 삐죽 내민 타이치가 반항하듯 가슴을 힘껏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스윽, 탁. 스윽, 탁. 스윽, 탁. 잠시 멈춰진 소리. 이윽고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또 공이냐. 시끄러운 꼬맹이.”
“고, 공 아니거든요! 그게 아니라…”
“그딴 게 아니면 돌아가라.”
빽, 타이치 자신도 모르게 힘껏 내질러버린 소리에 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대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타이치의 팔목에 매달린 예쁜 녹색의 봉투를 흘긋 살펴보았다. 타이치 또한 그 문이 굳게 닫히기 전 쿠도를 제치고 후다닥, 달려들었다. 탁, 탁, 탁, 넓적한 돌이 깔린 마당에 얄팍한 신발 밑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타이치는 달려가다 멈춰서서 휙, 몸을 돌려 쿠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바닥에 줄 자국이 생길 정도로 꽉 쥐고 있던 녹색 봉투의 손잡이를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이거. 엄마가 가져다주래요.”
“아무 이유 없이 주는 선물을 받을 필요는 없다만?”
“이, 이유 없는 거 아니거든요!”
쳇, 깐깐하기는. 그냥 주면 주는 대로 받으면 될 텐데! 다시 입이 댓 발 나온 타이치가 신발 앞코로 돌길을 툭툭 두드렸다. 그 사이 대문을 닫으며 타이치를 등진 쿠도가 말했다.
“할 말은 끝난 건가?”
“...송했..요…”
“평상시에는 시끄럽게도 떠들던 녀석이 목에 떡이라도 막힌 거냐? 안 들린다만.”
“이익!! 죄, 죄송했…고요…!!”
“이제 보니 목소리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배짱도 없는 녀석이었나 보군.”
스윽, 탁. 스윽, 탁. 타이치를 지나쳐 가는 소리가 귀에 날카롭게 감겼다. 들릴 리 없는 초침 소리가 시끄럽게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중, 아 진짜! 하고 타이치가 발을 쿵 굴렀다.
“공! 날려 보내서 죄송하게 됐다고요!! 이거! 사죄의 의미로 가져온…! 그, 상점가의 비싼 양갱!!”
탁. 바닥을 짚은 지팡이 소리가 멈춰 섰다. 그리고 타이치의 팔이 한껏 가벼워졌다. 쿠도의 손에 예쁜 녹색의 봉투를 든 채 타이치를 눈짓으로만 내려다보았다. 일순 서늘함이 느껴져 타이치의 기세가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또다. 이유 모를 긴장감. 단순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 혼난다는 데에서 오는 느낌과는 달랐다. 그보다는 뭔가, 누군가가 또 지켜보는 것 같은 기운이 본능적으로 찌릿찌릿 흘러들어왔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렇게 두려움을 닮은 감정들이 흘러들어오면 그를 거스르고 싶다는 기묘한 감각이 목구멍에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반항하고 싶어지는 무언가. 아주 사소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그 모든 것에 반하고 싶어지는 그런…
“받았으니 더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라.”
“...!”
타이치는 보이지 않는 시선에 압도당했다. 그것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왜? 어째서? 라는 생각이 그의 사지를 꽈악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웨웅.
“응?”
무언가 부드럽고 기다란 게 타이치의 종아리를 훑고 지나갔다. 서둘러 시선을 아래로 옮기자, 꼬리를 바짝 세운 흰색 고양이가 쿠도를 향해 총총총 걸어가고 있었다. 고양이! 라고 타이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와오옹, 웅, 엑오옥, 갖가지 소리를 내며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번쩍. 머릿속에 고양이의 호박색 눈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뭐야 고양이였구나. 타이치의 의문에 둘둘 말려있던 공포나 반항심 같은 건 매끄러운 털결에 미끄러 사라졌다.
“어이, 옷에 매달리지 마! 짐승 먹이가 아니란 말이다!”
“고양이 밥 먹고 싶어 하는 거 아녜요?”
“언제부터 양갱이 짐승 밥이었다고… 비켜!”
쿠도가 발치의 기모노에 고양이를 대롱대롱 매달고 걸어가고 있었다. 상당히 가격이 있는 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발치에 불규칙하게 낡은 자국이 있는 게 이제야 눈에 띄었다.
“고양이… 밥 먹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하아?”
자리에서 우뚝 멈춰선 쿠도가 탁, 지팡이를 짚고 서서 고개를 돌렸다. 날카롭고 차가운 위압감이 다시 타이치를 누르는 듯했다. 그러나, 타이치가 누구인가. 이 동네를 뛰고 구르며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 소년이 아니던가. 게다가 오늘은 특별했다. 동네에서 손꼽히는 무서운 집의 주인에게 큰소리를(?) 쳤으니까, 그러니까 두려울 건 없었다. 찌릿, 또다시 눈빛이 따라붙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 순간 마당에 모인 눈 만 하더라도 몇 쌍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에 타이치는 금세 위화감을 떨쳐내었다.
“제가 고양이 밥 주면 안 돼요??”
쾅. 대답 대신 현관문이 닫혔다. 쳇, 재수 없는 영감탱이. 타이치가 힘껏 혓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그냥 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현관 앞에 모여있는 고양이들 곁에 쭈그려 앉았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있다니, 고양이는 무서운 곳에 산다는 게 진짜 인가봐. 그런 생각을 하며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따끈따끈하고 조금은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털결이 미끄러지듯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쿠도가 매정하게 집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몇몇 관심들이 타이치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거나, 종아리에 머리를 콩콩 박기도 했다. 처음 보는 무수한 고양이 떼에 타이치가 어느새 소리내어 웃고 있는 그 때, 다시금 문이 열렸다. 거대한 대접을 옆구리에 끼고 한 손에 어마어마하게 큰 사료 봉투를 들고 있는 쿠도가 나타나자 고양이들이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이 밥!!”
“흥, 네 녀석이 알아서 해라.”
마루 위에 놓아진 사료 봉투와 대접을 어찌하라고 말도 않고, 쿠도는 고양이들이 매달리기 전에 다시 집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수많은 고양이와 대치 상태! 타이치는 사료 봉투를 열어보았다. 반쯤 남아있었지만 봉투째 부어버리기에는 무게가 상당했기에 대접째로 넣어 사료를 퍼 올리기로 했다.
“알았어, 알았어. 좀만 기다리라니까. 아야! 다리에 매달리지 마!!!”
쉬워 보였는데 쉽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식사 요청이 타이치에게 달라붙었다. 사료를 잔뜩 퍼 올린 타이치가 마당 한가운데에 대접을 내려두자,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덩치가 큰 고양이부터 작은 고양이까지 한꺼번에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새 휑하게 비어있는 타이치의 옆으로 바람이 불었다. 살랑살랑, 머리칼을 흩트리는 바람을 맞으며 어느새 타이치는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 영감탱이,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해서 떠맡긴 게 분명해. 훗. 타이치는 턱을 들고 콧김을 뿜으며 웃었다. 그야, 그는 해냈으니까!
* * *
“엄마, 나 왔어.”
“그래~ 짐은 이따가 풀고 오느라 고생했지?”
“여긴 여전히 버스가 느리더라. 도쿄랑은 천지 차이라니까.”
“얘, 타이치 손도 안 씻고 앉지 말라니까~”
“대학에서 여기까지 온 아들한테 그렇게 매몰차게 굴 일이야?!”
“대학까지 가서 기본도 안 돼서 어쩜 좋을지 엄마 욕이나 먹이지 말고, 어ㅅ…”
“어, 앨범이다.”
오랜만의 본가에 오자, 변함없는 잔소리 세례에 타이치가 화제를 돌렸다. 식탁 위에 올려진 앨범을 자신의 앞에 끌어두고 중간을 펼쳐보았다. 이때가 초등학생 때였나? 공터에서 친구들과 모여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때 여기서 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었는데… 타이치는 자연스레 공터에 가는 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상점가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와서, 걷다 보면 나오는 편의점 골목 그 주택가를 쭉 가면…
“어, 그러고 보니까 엄마. 쿠도 아저씨네 아직도 계셔?”
“응? 누구?”
“쿠도 아저씨 있잖아, 몰라? 성질머리 장난 아닌 안경 쓴 아저씨 있었잖아.”
“쿠도… 쿠도… 누구였더라? 아니, 그것보다 얘는 누군지 기억 안 난다고 해도 성질머리가 뭐,”
“기억 안 난다고? 엄마가 나 심부름도 보냈잖아!”
위화감. 10여년이 흘러 훌쩍 커버린 타이치의 몸을 뱀이 감아 오르듯 스산한 위화감이 입을 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투명한 모친의 눈빛을 들여다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타이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설명을 부탁했다. ‘야, 너희 예전에 쿠도 아저씨 알지? 그 무섭게 생긴 안경 쓰고 지팡이 짚던 아저씨 있잖아! 공 넘어가서 혼나고 그랬는데 기억나지?’ 모르겠다. 타이치는 다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모르겠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다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지? 몇 번이고 전화나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다.’ 타이치는 말아쥔 손바닥을 엄지손톱으로 꾹꾹 누르며 애써 설명을 이어갔다.
“진짜 몰라? 내가 공 넘겼다가 엄마가 심부름 보냈는데, 친해져서 자주 갔잖아. 거기 가면 카스테라도 먹고 오고, 아! 그리고 쿠도 아저씨네 있는 그…”
그 하얀.
‘네가 타이치 군이구나?’
번뜩. 섬광처럼 지나간 하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있었다. 쿠도 씨 외에도 하얗고, 길고, 그리고 두려운 눈을 가진 누군가가. 그 어느 날 대문 앞에서 마주쳤던, 같은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만들던 누군가가 분명히 있었다. 타이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 현관에서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왜, 어째서 기억하지 못 하는거지? 이유 모를 충동이 타이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잊고 있다니.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얘, 타이치 어디 가니!”
“잠깐 편의점!!”
타이치는 집을 빠져나와 거리를 내달렸다. 상점가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와서, 걷다 보면 나오는 편의점 골목 그리고 주택가 사이로… 그 어느날 공을 던지며 뛰어가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래, 분명히 있다. 있어야 한다. 내 기억이 가짜일 리가 없으니까. 고요한 주택가 사이로 타이치의 발소리가 급히 울렸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변함없는 주택가를 날리던 타이치가 서서히 속도를 낮췄다. 숨이 점차 차오르고, 발걸음이 멎었다. 타이치는 대문 앞에 섰다. 그래, 있잖아. 대문 옆의 명패에는 확실하게 쿠도(工藤) 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월을 맞아 낡았지만 여전히 반듯한 글씨체였다.
어릴 때보다 확연히 자랐지만, 위압감이 여전한 대문 위로 타이치는 손을 올려두었다. 있다. 여기에 분명히 있다. 타이치는 손에 힘을 주어 대문을 밀었다. 끼이익, 기다렸다는 듯 쉽게 열리는 대문에 타이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뒤로 한발자국 물러나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전보다는 확연하게 가깝게 느껴지는 대문의 높이.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앞에 서 있는 동안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이로 돌아가 버린 것처럼 대문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타이치는 대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야, 익숙한 곳이었고 골목대장의 위신도 아직은 건재하니까.
대문 안의 풍경은 여전했다. 손질이 잘 된 마당, 낡았지만 깨끗한 마루,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소리가 나던 넓적한 돌길… 고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누군가는 찾아오는지 곳곳에 놓여진 물그릇이 눈에 띄었다. 아직 누군가가 살고 있다. 타이치는 허리를 굽혀 마루를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여기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가끔 먹던 카스테라의 달콤함, 고양이들과 씨름하며 다친 손등, 자꾸 넘어오는 공에 혼이 날 때는 도망치며 웃던 일들… 그때의 내가 있다. 내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의 기억 속에는 사라진 듯했다. 이렇게 확실하게 살아있는데, 지금도 쿠도 가(家)는 살아 숨 쉬는 것 같은데 연기처럼 흩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타이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돌길을 걸어, 현관문 앞에 섰을 때,
“어라? 타이치 군?”
인기척 없이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타이치가 굳어버렸다. 하지만 알고 있는 목소리. 그러니까 그,
그 하얀.
‘네가 타이치 군이구나?’
“타이치 군 맞구나~”
아하하~ 밝은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타이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문 앞에는 여전히 하얗고, 길쭉한, 그러나 밝게 웃고 있는 그가 있었다. 유우고 씨. 첫인상은 서늘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스하게 자신을 맞아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우고가 한달음에 다가와 타이치의 양손을 답싹 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붕붕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그를 집 안으로 초대했다. 오랜만에 봤으니까~ 하고 그를 이끄는 그 모습이 주는 ‘여전하다.’ 라는 감각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 * *
“그러니까, 쿠도 군은 지금은 요양원에서 지내는 중이야~”
“아, 그렇구나. 하긴 내가 벌써 대학생이니까…”
“타이치 군이 오는 줄 알았으면 카스테라 사 오는 건데, 아쉽다~”
“그 카스테라 맛있었지! 선물용으로 들어오는 거라 비싸서 그랬던 건지 내가 어려서 더 그랬던 건지…”
“후후후… 사실은 말이지 그 카스테라 선물 받은 게 아니야~”
“응?”
“쿠도 군이 말이지, 언젠가부터 카스테라를 사 오라고 시켰거든! 단 걸 싫어해서 갑자기 빠진 건가~ 싶었는데 그 무렵에 타이치 군이 자주 왔잖아?”
“그 영감쟁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이야???”
“아하항~ 쿠도 군 상냥하니까~”
상냥. 이제는 알 것 같지만 그래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단어였다. 타이치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런…가?’ 하고 되물었지만 밝은 유우고의 웃음 소리에 뒤섞여 그마저도 어물쩍 넘어가게 되었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유우고 씨랑 딱 만나서 말이야. 막무가내로 찾아오긴 했는데 아무도 없었으면 민망할 뻔했잖아.”
“응, 그러게. 만나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까 타이치 군은 왜 온 거야? 쿠도 군을 만나러?”
“아, 아아. 그게…”
아무도 쿠도 씨를 기억하지 못해서 뛰쳐나왔다. 라는 말을 유우고 씨에게 말하면 그는 믿어줄까? 불신을 향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믿어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상한 사람 취급이라도 하면 좋겠다. 엄마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지식이 전무하기에 그걸 말하는 상대가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라보는 맑은 눈빛. 그 눈빛을 또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장황한 공포가 쩌억 입을 벌리고 타이치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그게, 어? 그, 그러고 보니까 유우고 씨는 뭘 들고 온 거야?”
“응? 아~ 오랜만에 사진 현상을 했거든! 앨범에 정리해 두려고~”
“오, 그거 좋네. 나도 구경해도 돼?”
“물론이지! 잠시만 기다려 주라~ 그 김에 앨범 가져올게!”
이윽고 유우고가 품 안에 두꺼운 앨범을 안아 든 채 자리로 돌아왔다. 탁자 위에 올려둔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자, 기억 속에 존재하던 것 보다 눈에 띄게 나이가 든 노년의 남성이 있었다. 빼빼 마른 고목나무 같이 변해버린 노인은 여전히 안경 너머로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미간의 주름은 이미 한 몸이 된 지 오래인 것처럼 구겨져 있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어딘가 애처롭기도 했다. 성장과 노화의 차이를 바라볼 때 으레 느껴지는 아릿함이었다. 사진 속 쿠도와 유우고가 현관 밖의 정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타이치는 말했다. ‘이렇게 나이가 들었던가?’ 그러자 유우고가 대답했다. ‘그야~ 타이치 군이 훌쩍 자랄 정도니까~’ 유우고가 앨범을 펼쳐서 비어있는 페이지에 가장 최근의 사진을 끼워두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반대로 넘겼다.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뒤로 넘어갈 수록 자신의 기억 속의 쿠도와 타이치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록된 타인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어린 눈으로 봤던 쿠도와 지금 바라보는 쿠도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아 타이치와 유우고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고, 이런 때는 저랬는데, 요즈음에는… 대화는 악보 위에 수놓아진 음표처럼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타이치가 어떠한 사실에 대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순수한 즐거움이 가져오는 긴 호흡이었다. 그러다 보니 쿠도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방학 중 찾아가겠노라, 허락을 구하려던 타이치가 멈춰 섰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침묵. 그 침묵이 그린 도화지 위로 그려진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왜 유우고 씨는 변하지 않지? 그 두꺼운 앨범이, 그러니까 노인이 청년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담은 앨범이 처음으로 되돌아 갈 때까지, 한 인간의 시간이 끝을 달리하고 있을 때까지 변함없는 것. 그게 가능한 일이던가?
쿵, 쿵, 쿵, 눈언저리에서 심장이 튀어 오르며 타이치의 머리통을 쾅쾅 울렸다. 심장 소리가 커짐에 따라 유우고의 말소리가 멀어졌다. 타이치 군?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던 유우고의 다정한 목소리가 손길이 되어 타이치의 어깨로 닿았다. 유우고가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쥔 채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왜 그래 타이치 군?”
“아, 그게, 그러니까… 그…”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지금 따뜻한 차 라도…”
“유우고 씨.”
“으응?”
“유우고 씨는 말이야… …안 늙네.”
“...”
침묵
“... …”
“... …”
이어지는 침묵
“... … …그,”
“... … … …”
“그, 그러니까 엄청난 동안?? 이라는 거겠지?”
“... … … … …”
아하하하하하. 딱딱하게 굳어 작위적인 타이치의 웃음이 그 사이를 엉망으로 갈라놓았다. 평평한 도화지 위로 뾰족한 연필을 내리찍어 구멍을 내는 것처럼, 보기 흉한 균열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유우고는 입을 다문 채 은은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웃고 있었지만 타이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유우고가 뭐라도, 뭐라도 이야기 해주기를. 그것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타이치 군.”
“어, 어어? 왜 그래?”
“만나서 반가웠어.”
마지막 침묵
* * *
길을 걷던 타이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섰다. 여기가 어디더라.
“아~ 편의점 지나쳤잖아!”
젠장. 음악에 너무 빠져있던 탓이었다.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을 한다는 게, 음악에 집중한 나머지 어느덧 안쪽 주택가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서둘러 돌아가자. 조금 더 늦으면 저녁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니, 그때 군것질을 한다는 걸 모친의 눈에 띄면 귀찮아 질 게 분명했다. 몇 번 흘러나오는 음악을 건너뛰고, 스마트폰 화면에 ‘Pictures of Home’ 이 뜨자 타이치는 음악의 볼륨을 잔뜩 키웠다. 요란한 드럼 소리가 다시 타이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곡은 언제 들어도 좋다니까. 그리고 커다란 나무 대문을 지나 도로를 향해 뛰어갔다.
살랑, 타이치의 뺨을 가느다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가볍게 어루만지듯이. 그리고 바람과 함께 하얗고 길쭉한 청년이 타이치를 스쳐 지나갔다.
‘저 사람 엄청 길지 않았나? 그건 그렇고 하얀 머리라니 나도 탈색이나 할까.’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띈 채 정면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타이치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을 향해 나아갔다. 끼이익, 쿵. 그리고 쿠도 가(家)의 대문이 굳게 닫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