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루에 치후유는 혼자 팔짱을 낀 채로 현 상황을 체크했다. 오오시로 타이가가 있는 것. 별것 아닌 일이다. 장소 역시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요나미네 탐정사. 이것도 대단찮은 일이다. 그가 멋대로 전학해 온 이래로 타이가와 같이 하교한 뒤에 탐정사에 머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과가 됐다. 두 사람이 의뢰인을 마주한다. 그것 역시 시답지 않은 일이었다.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그 상대가 치후유의 오랜 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츠루바미 키리코. 나이는 동갑. 초등학교 때 같은 학교, 중학교 때까지도 같은 학교였어.’
고등학교는 다르게 가긴 했지만, 어차피 이 근처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굣길에 누군가가 뒤를 따라오는 감각에 몸을 돌려 보면 거기에 키리코가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
“뭐가?”
“저기, 치 쨩 맞지?”
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쯤. 아무래도 냉랭한 구석이 있는 치후유에게 끝까지 부드럽게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은 드물다. 키리코는 그가 이름을 부르자 반가우면서도 복잡한 얼굴을 하고는 선뜻 근황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드문 말을 꺼내 들었다.
“저기, 아직도 탐정 일 해?”
“하고 있어. 지금도….”
옆에 있는 녀석을 파트너로 달고 다닌다는 이야기까지는 사족 같아 그는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키리코는 우물쭈물 두 손을 모았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잠깐 이야기 좀 해도 돼? 아, 그쪽은…."
“직장 동료.”
“…이자 반 친구.”
“그, 그렇구나… 그쪽도 탐정?”
“그래. 탐정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라도?”
긍정하는 그를 데리고 탐정사로 향했다. 그저 의뢰받는 일일 뿐이지만….
“그쪽은 무슨 사이야?”
“초등학교 때 친구.”
“그래? 그럼 나루에의 초등학생 때를 알겠군?”
“어어… 그렇지.”
“어땠어?”
사족이 길다. 치후유는 지난 일을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할 때 가장 강렬한 기억부터 떠올리던가. 그러면 치고 들어오는 기억이 그렇게 기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치후유는 키리코에게 눈짓했다.
“어어… 글쎄.”
"이 녀석, 어릴 때 이야기는 잘 안 하니까."
“지금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치 후유는치후유는 일부러 잔을 가운데 끼워서 둘 사이를 방해하듯 차를 내주고는 소파의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잡담은 거기까지. 볼일이 있는 거잖아?”
어쩐지 기회를 잃어 탐탁지 않아 보이는 타이가를 무시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키리코는 금방 대화하던 것을 멈추고 다시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이걸 탐정에게 맡기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몸이 많이 안 좋으시거든. 그래서 곧 유언을 확인하고, 재산을 정리한다고 하셔서…"
탐정을 찾아갈 일이 아니라 변호사를 찾아갈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비합리적인 사람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 말에서 목표를 찾고 탐정이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은 익숙했다. 그 와중에 어쩐지 부서져 있는 유리 장식이 근처에 얌전히 놓여 있는 것도 거슬리지만 신경 쓸 이야긴 아니었고, 결론을 내렸을 때도 딱히 ‘탐정의 일’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건 파트너도 동일했다.
“그러니까, 유산 상속이 잘못되면 패악을 부릴 성격 나쁜 삼촌이 있단 거지.”
“변호사의 보조 역할이네. 옆에서 너를 지키기도 하고.”
“응, 아무래도 어른은 무섭지…. 치 최고쨩 정도면 믿음직하다고 생각돼서….”
그는 버릇처럼 턱을 만졌다. 아무래도 타이가의 표정도 비슷해보였다.
"흠. 우리가 할 만한 일은 아닌데."
“그렇지? 아무래도 사건은 아니니까."
“두 사람, 친한가?”
“치, 친했었어! 친구랑 놀러 간다고 생각하고 따라와 주면 안 돼? 좀 많이 멀긴 하지만….”
“심지어 멀리까지 가야 하는 건가….”
“어,으, 으응. 아오모리까지….”
“멀잖아.”
동네 이름을 말한다 한들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타이가가 고민하는 얼굴을 하자, 치 후유는치후유는 자기 선에서 일을 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입을 열었다.
"가게 돼도 타이가 씨랑은 상관없는...."
“잠시만. 그러고 보니 아오모리는….”
“……?”
어쩐지 그 시선이 눈앞의 키리코에게 가 있지 않고 멀리 아오모리에 가 있는 것만 같았다.
“같이 가도록 할까.”
“…왜?”
“파트너 아니야. 나루에. 가지.”
“정말?!”
의뢰가 받아들여질 것 같아지자, 키리코의 눈이 빛났다. 그거와는 별개로 치후유의 표정에는 그늘이 지었다. 타이가만큼의 번쩍거림은 없었지만, 치후유 역시 탐정으로서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 눈치는 있다. 시선이 장식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유리 조각에 향했다.
"그럼. 우리는 같이 움직이거든. 그리고 거기는 유리 공예로 유명하다지? 하하, 마침 잘 됐어."
“아, 맞아. 본가가 있는 쪽에도 유리 공방이 있거든. 그래서….”
이거, 저 녀석이 깬 거다. 만회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거다.
“타이가 씨.”
“딱 좋지?”
“…빚은 없어.”
맡고 싶었던 일도 아닌데 이런 일로 타이가에게 빚까지 생기는 건 사양이다. 치후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골칫거리를 가져온 키리코와 업무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탐정에게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어, 추리력일까나….’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
‘왜 돈 가진 노인네가 이런 데서 잘 사나 몰라.’
날은 흐렸다. 아래 지방에서 올라오기 전에 비가 내리더니, 구름이 느릿하게 쫓아 오는 것만 같았다. 기차를 타고 내렸을 때만 해도 번듯하게 서 있던 건물들이 갈수록 작아지고 뜨문뜨문해지었다. 뭐가 좋은지 옆에 있는 탐정 나리는 다시금 제 과거 이야기를 떠보는 것 같지만, 키리코는 쉽게 대화를 터주지는 않았다. 눈치를 보는 탓이겠지
“여기서 버스를 한 번 타면 이제 끝이야. 차는 하루에 두 번 오고.”
“들어가고 나가면 끝이겠네.”
“그렇지…. 할아버지 집은 다리 건너에 있어서 또 마을 쪽으로 나오려면 한참이고.”
초라한 정거장이었다. 어둑한 하늘에 물들어 낡아 녹이 슨 지표가 갈 길을 안내할 뿐이다. 어쩐지 사람이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 같지만,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차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차 대신 온 사람들을 보고 선뜻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키리코 역시 아는 눈치는 아니었으나, 본가까지 가는 버스다 보니 가볍게 인사를 따라 받아주었다. 그러면 그는 웃으며 명함을 먼저 건네주었다.
“츠루바미 가 분인가요? 어머님과 많이 닮았네요. 변호사인 후지무라 히데유키라고 합니다. 그쪽 분들은?”
“아, 츠루바미 키리코예요. 이쪽은 제 친구들.”
“나루에 치후유라고 해요.”
“오오시로 타이가.”
그는 안도하듯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한 번 닦고는 웃어 보였다.
“멀리서 오셨나 봅니다. 아무래도 가까운 동네라도 멀 수밖에 없긴 한데요. 역시 그거 때문에 상속자들은 빠짐없이 모이는 걸까요. 꺼내놓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이는 것에 타이가가 반응하면, 치후유는 그저 눈을 굴리면서 명함 속의 글씨를 흘끗 바라볼 뿐이었다.
“그 악보 말이에요. 츠루바미 씨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죠. 시골의 땅이나 집이야 쳐봤자 결국 값어치가 그렇게 나가진 않으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히데유키는 상대가 반말로 응대하든 말든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키리코는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츠루바미 씨, 아차, 이제 가면 다 츠루바미 씨밖에 없을 텐데. 그러니까, 이번에 유언을 공증하실 노보루 씨가 가지고 있는 악보입니다. 슬픈 사연이 있는 악보지요. 악마의 재능을 가진 나리타 케이스케의 유작입니다. 그가 왜 악마의 재능이란 별명을 가졌는지 아십니까?”
“아뇨.”
치후유는 나리타 케이스케란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들은 적이 있지만, 그의 일생에 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치후유는 그저 시선이 다시 키리코 근처에 머무른 채로 그가 멋대로 떠드는 것을 경청했다.
“그도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무명 작곡가였죠. 하지만 불행해질 때마다 그가 작곡하는 것이 심금을 울리는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어린 딸이 죽었을 때였답니다. 그 슬픔을 담아 쓴 곡을 듣자, 동생은 그를 가두었습니다.”
“왜?”
“그를 불행하게 만들면 곡이 더 아름다웠기 때문에요.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하데요 키는 조금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불행해진 그는 계속 명곡을 만들어 냈죠. 지금 저희가 알고 있는 곡도 대부분 그때 나온 겁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만들어 낸, 죽어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곡이 바로 노보루 씨가 가지고 있는 장송곡이죠. 세상에는 풀리지 않았답니다.”
“왜?”
“후후, 역시 끝까지 들은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소문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세상을 저주하는 곡이니까요. 그 곡을 들으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게 된다는 말도 있고. 공개된 부분도 뭐라고 하더라, 사람을 가두고 칼로 찌르고 싶은 마음을 곡에 담아 표현했다는데 그게 섬뜩해서.”
사람들은 왜 그런 소문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악보의 가치를 한결 올려주긴 하겠지. 키리코는 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없이 그저 도로변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기왕 이렇게 된 거 곡이 어디로 가나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유언의 공증을 맡기도 했고요.”
“확실히. 멀리서 와야 했죠.”
“그 불행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
타이가도 치후유도 그런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치후유는 인간의 약함을 빗대어 무어라도 쥐고 싶은 사람의 감정이 잘못 표현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나마 그런 그의 즐거움에 말 상대가 되어줄 사람이야말로 키리코가 유일하다고 생각했으나, 어쩐지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았다. 이 기묘한 위화감에 치후유는 생각에 잠겼으나, 이내 차가 오는 소리에 대화 주제가 바뀌어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 옆을 흘려 숲에서 몰려오는 바람 소리가 꼭 귀곡성처럼 들렸다.
벌레 먹은 것처럼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강의 수위도 넘실거려 굳이 확인하러 가지도 않아도 마을까지 가는 길은 끊겨 있을 것이다. 어스름한 빛을 받으며 조금 전의 대화를 되새긴다. 무언가 감추는 게 있는 집안. 유쾌함 따위는 없는 살인 사건. 고립된 공간. 치후유는 그 끝에 있는 한 명의 유령 같았던 여인에 대해서 다시 떠올렸다. 언니가 있다고 키리코에게서 이전에 들은 바는 없었다. 그와의 대화를 일일이 기억해 두는 것은 아니니 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감추고 싶어 하는 것 한둘쯤은 있지만 어차피 이곳에 온다면 마주칠 일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그 사람, 2층에 있었지.’
세상에 유령 따위는 없다. 유령 같은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코끝을 아릿하게 스치는 단백질 태우는 냄새를 기억하며 치후유’는 계단을 올랐다. 그 순간 번쩍, 빛이 일었다가 천둥이 쳤다. 바닥으로 무언가 나동그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늘었다.
“키리코.”
“치 쨩.”
빛을 등지고 선 탓일까. 키리코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지도 않고, 키리코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디 가?”
“2층에.”
“왜?”
“왜냐니… 수사 중인걸.”
“헤집을 만큼 헤집지 않았어? 이제 충분하잖아.”
키리코는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자신의 품에 넣듯 움직이고는 다시 빛을 등진 채로 치후유를 바라보았다.
“남의 집을 그렇게 뒤집어 놓고 다니면 재미있어?”
“네가 먼저 한 의뢰야.”
“내가 한 부탁은 그게 아니었지.”
품에 넣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키리코가 대답했다. 치후유는 기억 속에서 저런 자세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흉기를 쥐고 있는 걸 숨기려고, 혹은 숨기지도 못하는 사람 같은 모습. 보이지 않는 표정. 유령 따위가 아니다. 실재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긴장감이 치후유의 등 뒤를 스쳤다.
“이상하네, 치 쨩.”
딱, 딱, 품에서 손톱 끝과 금속 질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하… 혹시 치 쨩이 범인인 거 아냐? 아니, 범인이라고 해야 하나 공범? 두 사람이면 알리바이를 맞추기 자연스럽잖아.”
“들어줄 가치가 없는 말을 하네.”
두어 걸음, 안전거리 밖. 무심히 거리를 재고 있으면 다시 번개가 주위를 순간 밝게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범인도 그렇게 말하겠지? 응?”
“키리코.”
치후유가 아는 키리코와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것이다, 사람이 달라질 시간은 충분히 있었지만,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겠지.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 걸까. 치후유가 잴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즐거운 상상은 아니어서 그저 이름을 불렀다.
“맞아, 물증은 아니지만 심증은 있어.”
“뭐야.”
“오오시로 군을 도망가게 한 건 치 쨩이지?”
도망…만약의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세어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치후유는 순간 대답을 잃었다. 키리코는 그에게 다가섰다.
“왜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오오시로 군을 도망가게 했어? 최소한 협력자…가 될 수 있는 거 아냐?”
“설명하면 이해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데, 원래 그런 애라서. 사건이랑은 상관없어.”
“못 믿겠어.”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가. 아니면 나약함을 가정하는 건가. 한번 몰입하듯 답을 정해 버리면 바깥에서 무엇이라 외쳐도 들을 생각이 없다. 특히 증명할 수 없는 문제라면 더더욱. 키리코는 손을 내밀었다.
“그럼 핸드폰을 줘. 오오시로 군이랑 범행을 더 저지르려고 연락할지도 모르잖아. 수사에 핸드폰은 필요 없겠지?”
“하아….”
치후유는 고민에 빠졌다. 이곳에서의 자기 방위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주는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애는…….
‘나는… 나는 분명히 사건을 해결했는데.’
‘맞아, 치 쨩은 틀린 거 없는걸.’
‘그런데 왜 아무도 내 말을….’
‘그, 글쎄… 우리가 어리기 때문일까. 그래도 나는 치 쨩을 믿을 거야.’
…믿어주기로 했었는데.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
치후유는 키리코에게 핸드폰을 던지듯 넘겨주었다. 사건 수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나누어야 하는 이야기도 있긴 하겠지만, 그쪽도 도망쳤다면 연락이 잘될 것 같지는 않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으니 치히로는 막힌 길을 보고 다음 길을 찾기 위해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키리코는 핸드폰을 받은 채로 침묵하고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타이가와 연락이 되지 않는 채로 치후유는 사건 조사를 이어갔다. 안뜰에는 비가 내림에도 지워지지 않는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남아 있었다. 타다 남은 조각 정돈 발견할 수 있었지만, 뚜렷한 사건과 인과를 느끼진 못했다. 키리코가 결국 자리를 뜬 사이 계단을 올라가서 몰래 방문을 열어봤더니 몇 개나 되는 가면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일부러 걸어놓은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렇게 해두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공포랄 것을 그리 잘 느끼지 않는 치후유로서도 선뜻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생활 흔적은 있어.’
다만 사람은 없다. 자리를 비웠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많이 돌아다니는 편은 아닐 것 같은데. 유령 같은 미나코는 이곳에 정말 실존하는 걸까, 아니면 그 작곡가처럼 유폐되듯 이곳에 살고 있는 걸까. 치후유는 장갑 낀 손으로 창틀을 한 번 쓸어보고는 방을 나섰다. 밖은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으니 멀리 가지는 않았을 터. 그러나 결국 치후유는 유령을 찾아내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타이가에 연락하기 위해 주머니 속을 더듬었으나 녹음기만 잡혔다. 애매한 무게감에 치후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사람이 죽은 탓에 저녁은 조금 늦은 시간에 준비되었다. 노보루는 그래도 가족 모임이 있었으니, 저녁은 같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벌레 씹은 표정을 더해 식사를 했다. 외부인인 에츠코, 즉 키리코의 고모 남자친구 토요쿠라까지 잠시 모습을 보였지만 전부 모인 건 아니었다. 우선 타이가도 없었고, 미나코도 저녁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타이가가 오지 않은 건 결국 귀찮은 대화 과정을 거쳤어야만 했지만(그 와중에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미나코가 없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곳은 낙원은 아니지만 오멜라스라고 부른다면 그것도 못 할 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노보루가 빅 브라더라도 되고 싶은 건지. 가족들이 있는 자리가 불편한지 속이 안 좋다고 토요쿠라가 자리를 뜨자, 노보루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을 붙잡아 두었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예절이라는 걸 몰라서….”
로 시작된 이야기로, 똑같이 자리를 뜨려고 했던 치후유를 붙잡아서 치후유는 그의 말을 끊으려고도 했지만, 후지무라 씨가 그것을 간신히 말렸다.
“오오시로 씨도 없는데 나루에 씨까지 자리를 비우면 정말로 의심의 화살이 돌아가 버릴지도 몰라요? 저도 당신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고작 그런 걸로….”
“이쪽 사람들은 가족이에요, 나루에 씨.“
후지무라는 묘하게 웃는 얼굴을 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별거 아닌 것으로 보여도 결국 당신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어요. 저도 제 몸부터 사릴 거고요.”
“당신도 걱정이 많네요.”
“어이쿠, 누가 범인인지도 모르는데 당연하죠. 전 죽고 싶지 않아요.”
더 증거를 찾으려고 해도 이제 연결점이 부족한 때기도 했다. 그래서 치후유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증거를 찾을 겸, 그의 말에 수긍하고 타이가를 기다릴 겸 그곳에 있기로 했다. 그러고는 잠깐 생각했다. 그를 신뢰해도 되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번뜩이는 점은 분명 새로운 정보를 연결할 곳을 찾아내겠지. 이것은 신뢰라기보다는 조금 더 질척한 감정 같다고 스스로를 평하며, 치후유는 노보루의 말을 흘려들었다. 곧 죽을 거라고 말해놓은 것 치고는 제법 정정하군. 아주 지루해서 정말로 슬슬 피곤하다고 들어갈 즈음.
“잠깐, 저거 뭐예요?”
창밖으로 꺾어진 저택의 2층의 그림자가 비쳤다. 시시한 추억팔이를 하던 도중 에츠코가 그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쪽에는 두 명의 인영이 비치고 있었다. 기묘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높게 칼을 들고 있는 것 같은 인영이 상대편에 있는 인영을 콱, 찌르고 있었다.
“어, 어?”
“……!”
“꺄아아아악!”
에츠코가 비명을 질렀다. 그럼, 그 소리에 숨죽이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는 듯 기웃거리는 가면을 쓴 유령이 눈앞에 나타나자….
“미나코! 넌 들어가 있어!”
노보루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미나코는 잠깐의 멈춤 끝에 몸을 돌려버렸다. 그 순간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집에 있긴 했었구나, 하는 짧은 생각은 바로 저쪽에서 벌어지는 사건 때문에 잊어버리고 만다. 치후유는 달려가듯 계단을 올라 사건이 벌어진 방으로 향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뒤를 이었다. 누군가가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것 같았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는 칼에 찔린 채 쓰러져 있는 남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살아있을 만한 출혈이 아니긴 했지만.
“또 살인… ”
“아, 타츠오!”
“에츠코!”
에츠코가 놀라서 힘이 풀려 쓰러질 뻔하자, 뒤에서 레이카가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쓰러지기 전에 키리코가 에츠코의 몸을 받았다. 치후유는 녹음기를 가까이 대고 대략적인 시간을 말한 후 토요쿠라 타츠오의 사망을 선언했다.
“창밖으로 나간다지만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으, 응….”
“…그러면…. 아니, 장송곡에….”
“…….”
이렇게 비가 내릴 때는 외부에서 사람이 올 수가 없다. 그래서 경찰도 아직 이곳에 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곳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범인이란 거야…?”
“하지만, 조금 전에 다 응접실에 있었잖아.”
“…오오시로가 없는데.”
“…….”
하다못해 그 미나코마저도 큰 소리에 이곳에 왔는데, 타이가는 없다. 정말로 범인일 리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싸늘했다.
천둥이 쿵, 하고 치면 빗소리에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어둠이 잠시 저택을 감쌌다.
“나루에 양이라고 했나.”
“…그래요.”
“이 상황에서 더 피곤한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데.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잘 모르겠는데요.”
“오오시로 타이가가 범인인 것 같은데, 네가 움직이면 그녀석의 범행 증거를 은닉하려고 하지 않겠어?”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공범일 수도 있잖아!”
키리코와 한 핏줄 아니랄까 봐. 이 기묘한 이상함은 알고 있었다. 타이가가 말해주듯, 서로를 감싸려고 하는 묘한 분위기가 이 가족들을 감싸고 있다. 좋은 말로 하면 끈끈하고, 나쁜 말로 하면 뒤에 켕기는 게 있다는 것처럼.
“저는 사건을….”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뒤늦게 도착한 노보루가 고성을 내었다. 그러자, 양쪽에서 치후유의 손이 잡혔다.
“외부인은 얌전히 있어. 그 녀석 아니면 누가 한단 말이냐!”
“잠깐….”
“저 녀석도 치워버려! 내버려 두면 사고를 칠 거다.”
누구의 손일까. 몇이나 되는 손에 붙들려 끌려갔다.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작은 방에 떠밀려 들어가자,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벽 한 겹을 지나 그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긴 하였으나 꾸역꾸역 천둥이 울 때면 소리가 들렸다. 치후유는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문을 열어주진 않았다.
“…….”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 탐정으로서 일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늘 벽에 부딪히고 만다. 결국 나가는 것을 뒤로 미루고 희미한 등을 켜자, 방의 벽에는 가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표정은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 기쁨에 가까운 얼굴도 일그러져서 기쁨인지 고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치후유는 자기 얼굴을 만졌다. 만지는 것만으로는 무슨 얼굴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최악이네….”
무력감은 그 시절보다는 나았지만,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사람이나 가면이나 비슷한 것 같다. 치후유는 잠시 웅크리고 있었다.
사건이 끝난 뒤 며칠 뒤, 도쿄까지 내려온 먹구름도 가시고 나서. 당번이 타이가를 버리고 치후유는 먼저 탐정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마침 유언을 공증하던 변호사였던 후지무라 히데유키가 방문해 있었다. 원래 그들이 없었다면 적당히 탐정사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남기고 떠날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어찌 시간이 맞아 잠깐 이야기할 시간은 가질 수 있었다.
“하긴, 고등학생이라고 했죠? 어린 건 알고 있었지만 교복을 입고 보니까 실감이 나네요.”
“그게 할 말의 단가요.”
“아, 아뇨. 조금 전에 이야기한 걸 또 이야기하려니까 좀 그래서. 그러니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변호사는 간단히 알려 주었다. 탐정이 알 필요가 없는 일이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해결한 사건에 대한 것이니 치후유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여러모로 얽힌 사건이기도 하고, 살인을 긍정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불쌍한 면도 있어서, 재판 때는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본인이 안 하고요?”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요.”
“그래서 무죄 요청이라도?”
“형사재판에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없어요. 살인 사건은 명백하니까 그냥, 정상 참작을 해줘서 좀 형을 덜 살게 부탁하는 거죠.”
후지무라는 마지막으로 게 과자를 내놓으며 잠깐 멈췄다.
“아, 그래도 말이죠. 그거 아십니까.”
“뭐를요.”
“장송곡 말이에요. 그 악보, 세상을 저주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뒤에 누락된 내용이 있다고 하더랍니다.”
“누락?”
“네.”
그는 애매모호하게 웃었다.
“이런 세상을 저주하지만, 사랑하는 딸을 만나게 해준 것은 감사한다. 그러니 나는 죽어서 다시 그 애를 만날 거고 그건 슬퍼할 일이 아닌 기쁜 일이라나. 그러니 저주도 무엇도 놓고 천국으로 향하겠다는 것이 그 곡의 주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는 건….”
“네, 불행한 노래는 아니네요. 세상에 내놨다고 해도 히트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부분이 중요해요?”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오오시로 씨한테도 안부 전해 주세요. 그럼, 다음에.”
그는 무언가 또 감추듯 쫓기듯, 재빠르게 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 치후유는 그가 놓고 간 홋카이도 대게 전병을 보다가 다과로 삼기 위해서 차를 끓였다. 한창 차를 즐기고 있으려니까, 어쩐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채로 타이가가 탐정사에 들어왔다. 치후유는 그가 그런 얼굴을 하는 게, 자신이 이야기해주지 않은 어떤 것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놓고 가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루에….”
“이거나 먹어.”
치후유는 말을 끊기 위해 전병을 툭 던져주었다. 그는 소파에 앉으며 전병을 확인하고 봉투를 뜯었다.
“갑자기 웬 대게 전병이지?”
“저번 사건, 변호사 후지무라 씨가 잠깐 들러서 선물로 주고 갔어.”
“그래? 무슨 이야기를 했어?”
“음….”
치후유는 그저 들은 대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자주 같은 건 없는 평범한 곡이었다는 이야기도 가감 없이. 그러니 저주를 흉내 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다.
“…결국 뒷내용, 악보하곤 달랐네.”
"하하, 희망적인 이야기 아니야?"
“그렇지. 하지만 키리코도 미나코도 사람을 죽였잖아."
갇힌 듯 살아가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기 위한 동생은 없었다. 거기서부터 맞지는 않았지.
"그 사람들에게도 그런 뒤가 있을까."
"글쎄. 일단 사람을 죽인 데에 대한 죗값부터 받아야 하고….”
치후유는 컵 하나를 더 내주었다.
"재판도 재판이지만, 미나코는… 속이 완전히 타버린 듯한 태도였지, 사실.”
“…….”
“녀석이 다시 사람을 믿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자신을 위하는 가족도, 동생도. 결국 좋아하지 못했잖아.”
“딸 같진 않은 거지.”
그래도 죽어서 영원히 박제될 일은 없다. 사람은 세월에 따라 깎이거나 새로 쌓이거나 하면서 바뀌니까. 이데아와는 다르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가족이면서도 서로를 믿지 못했으니까… 서로 일을 꼬아버린 것 아니겠어."
“그렇지.”
차는 따뜻하고, 바깥의 공기는 서늘했다. 더 이상 질척한 비는 없었지만, 그 순간은 다시 가면으로 가득한 방의 감각이 들었다. 모두가 솔직하지 않은 면이 있어서…. 마치 가면을 쓴 가족 같았다. 결국 차를 다 들이키고 나서 치후유는 혼자 팔짱을 꼈다.
"타이가 씨는 날 믿어?"
"지금까지는 꽤 믿을 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치후유도 타이가도 탐정이라는 족속이다.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믿는 것과 별개로 진실을 보려고 하겠지."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런 의미에서 신뢰라면…. 신뢰라고 할 수 있겠네. 진실을 향하는 시선은 같아할 테니까.”
더 소중한 것, 이라는 감정적인 문제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저울은 기울어질 수 있지만 추가 정확한 무게를 나타낸다면 맞출 수 있다. 그것이 한없이 투명한 것이어도.
“아, 그래도.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너부터 믿겠지. 이것도 마찬가지인가?"
“…….”
그리고 저울에 아무것도 올릴 것이 없다면 그때는 그런 감정들을 믿어 볼까.
“그래.”
치후유는 테이블 올려놓은 유리 장식품을 손으로 툭 두드려 보고는 마신 찻잔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언제 그 이야기를 해줄 셈이지."
"계약할 때는 계약서를 똑바로 써야 한다는 걸 배웠네, 타이가 씨. 다음엔 언제까지 이야기해 주겠다고 받아 놔."
“…….”
어째서 탐정으로서의 활동 방향성이 다르게 되었는지. 또 몇 번 실랑이가 오가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탐정이란 것은 파헤치는 것에 익숙해서 다 파고냐면 귀신같이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타이가가 친 후 유에 미지인 영역이 있듯, 치후유도 아직 그것을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사건을 분류한 김에 발견한 다른 사건 이야기나 해볼까. 그러니까 요나미네 선생님이….”
그리고 평범한 시간으로 돌아온다. 다음 사건을 받을 때까지. 언제나처럼.
치후유는 그가 파트너인 것이 이제는 너무 익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