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assy Rhapsody
Oshiro Taiga & Narue Chihuyu
날카로운 음성이 쩌렁쩌렁, 실내 천장을 뚫을 듯이 울렸다.
신경질적인 중년 여성의 목소리.
“말이 안 되잖아!”
“분명히 약속을 받았을 텐데요, 아버님.”
점잖은 여자의 말이 그 뒤에 따라붙었다.
흥분이 가라앉아 있었을 뿐,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불쾌감의 농도는 유사했다.
소리를 지른 쪽이 츠루바미 에츠코, 불평하는 쪽이 츠루바미 레이카.
두 사람은 가족이었으나 피가 섞인 관계는 아니었다.
둘의 관계의 중심에 있는 남자가 츠루바미 켄지.
그는 에츠코의 오빠이자 레이카의 남편으로, 츠루바미 일가의 장남이었다.
“아버지, 저도 이번 결정은 동의를 못 하겠습니다.”
켄지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 역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기에.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흐리멍텅했고, 어투도 힘이 없었다.
다시 말해, ‘아버지’라고 불린 츠루바미 노보루의 기세가 훨씬 압도적이었다.
“허튼 소리! 이미 결정된 일이다.”
벼락 같은 목소리가 아들과 딸, 그리고 가족들을 꾸짖었다.
“너희들은 이미 하는 일이 있지 않더냐. 켄지도 회사가 있고, 에츠코도 가게를 물려받았지. 심지어 에츠코, 네 이혼 위자료까지 내 지갑에서 나갔어! 그렇다면 당연히 코이치에게도 그만한 몫을 내주어야 하지 않겠나.”
힘이 들어간 목소리, 위엄이 느껴지는 말투.
병환이라고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 당당한 기립 자세까지.
그 자리의 모든 친족이 싫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불만과 별개로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이,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상황을 정리한 것은 변호사였다.
그가 중얼중얼 지껄이며 유언장이 담긴 서류 가방을 닫아 챙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상의 폭력 사태나 언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상속을 받은 차남 츠루바미 코이치가 구태여 쓸데없는 소리를 나불대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는 단지 모두에게 공격받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덕분에 평화로웠다.
“저녁 시간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회장님.”
공손하게 제안하는 초로의 남성은 테이시 타이조.
노보루 밑에서 수십 년을 일한, 츠루바미 기업의 부사장이었다.
침착한 중재에 에츠코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머리를 좀 식히고 다시 만나죠. 타츠오.”
“가자, 에츠코.”
에츠코의 뒤를 그녀의 애인인 토요쿠라 타츠오가 따랐다.
삽시간에 조용해진 응접실.
“미안, 나도 부모님을 따라가 볼게.”
하나둘씩 떠나가는 가족의 뒷모습을 보며, 츠루바미 키리코가 말했다.
양해를 구하는 듯이, 눈가를 찡그리며. 그녀가 방을 나섰다.
“뭐야? 초대한 주제에.”
“따라가지 마, 타이가 씨. 해야 할 일이 있겠지.”
두 명의 탐정 중 불평하는 쪽이 오오시로 타이가(大城 大我).
그리고 말리는 사람이 나루에 치후유(生枝 千冬)였다.
두 사람은 신출내기 탐정이지만, 벌써 몇 번이나 함께 사건을 해결한 파트너였다.
같은 고등학교의 동급생이기도 했으며, 탐정사의 데스크는 바로 옆자리였다.
또래에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묶인 형편. 심지어 이 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래서일까, 오오시로 타이가는 요구를 순순히 따랐다. 자리에 앉은 것이다.
대신 그는 여느 때와 같은 투덜거림으로 짜증(분노일지도 모른다)을 잠재웠다.
“쳇, 날씨가 이래서야. 밖에 나가기도 애매하고.”
그가 고개를 돌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크림색의 멋스러운 서양식 장식이 가득한 창틀이 창밖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에는 창밖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톡톡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았고, 빗소리는 꾸준했다.
한바탕의 소란만 없었다면 ‘고요한 풍취가 느껴지는, 지방 부호의 저택’이라고 요약할 만한 자리였다.
여전히 선 자세를 유지하는 치후유에게, 타이가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싸움이 일어날 줄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 같지.”
“이런 꼴을 예상해서 우리를 불렀을지도.”
두 명의 탐정이 단편적인 추측을 늘어놓는 사이, 응접실 문이 열렸다.
건들거리며 들어오는 남자는 노보루의 차남이자 이 집안의 셋째인, 츠루바미 코이치.
그는 나리타 케이스케의 ‘저주받은 장송곡’ 악보를 상속받게 된 장본인이기도 했다.
“저기, 두 사람…….”
“네가 앉았던 의자 밑에 떨어져 있더군.”
질문도 듣기 전에 타이가가 코이치의 말을 잘랐다.
“라이터를, 흠흠. 그래. 고마워.” 코이치가 멋쩍게 대꾸했다.
그는 자신을 탐정에게 소개한 뒤, 시답잖은 수다를 밀어붙였다.
“날씨가 좋으면 괜찮은데, 비가 와서 말썽이지. 비가 오면 순식간에 강물이 불어나거든.”
코이치가 눈가를 찡그리며 웃었다. 조카인 키리코와 비슷해 보이는 생김새가 짧게 스쳤다.
“하늘을 보아하니 밖에 나가더라도 두 시간 내로 돌아와야겠는데.”
그가 덧붙이자, 곤란한 투로 치후유가 되물었다.
“강물이요? 그럼…….”
“오면서 다리를 건넜잖아. 출입구가 거기밖에 없다고 하던데.”
“그 말대로야. 다리 자체는 튼튼하지만, 비가 오면 손쓸 틈이 없어 문제지.”
타이가가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에, 코이치가 증언을 덧댔다.
본래는 느긋하게 외출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이 이렇다면 서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오모리로 출발한 목적 중 하나는 ‘동료의 손상된 유리 공예품을 변상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치후유가 핸드폰으로 돌아갈 일정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타이가에게 질문했다.
“나갈 거야?”
“…소류에게 갚기로 했어.”
“그러면 금방 그것만 사고.”
치후유는 못이기는 척 승인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타이가는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집중력이 바닥나는 성정이었고, 지금 짚어두지 않으면 마을을 나갈 때는 잊어버릴 게 분명했다. 아니면 반대로 기념품을 신경쓰느라 중요한 일을 망칠 수도 있었고.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타이가 씨, 소류 씨의 그건 왜 깨진 거야?”
“야구공을 던지다가.”
“사무실에서?”
“당연하지.”
“…….”
뻔뻔한 대답에 치후유는 말을 아꼈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
버스는 없고, 가까운 마을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온 그때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양손은 가벼웠기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마을은 대부분 가판을 정리하고 창문을 걸어잠갔다.
그러나 여전히 실내 조명이 반짝거리는 기념품점을 면밀히 찾아, 탐정들은 문을 열었다.
“이것도 하나 할까.”
“마음대로 해.”
투명한 유리 모양 장식품. 10월을 맞이해 내놓은 계절 상품이었다.
둥근 끄트머리가 화려한 색으로 물들어 있고, 크기도 손가락 마디만큼 작았다.
타이가가 세 개의 유리 공예품을 계산대에 올려놓았을 때쯤.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기념품점 창문을 후두둑, 후두둑 때리기 시작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그러게, 곧바로 올라가야겠는걸.”
타이가와 치후유의 짧은 대화에 점장이 바코드를 찍으며 말을 붙여왔다.
“어차피 강 건너는 사유지입니다. 허락이 없으면 올라가지 못하니까요.”
“그 사유지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저희는 츠루바미 씨의 손님이거든요.”
타이가가 막무가내로 말을 던지고, 치후유가 부연 설명했다.
그러자 일순간, 능청스럽게 웃던 기념품점 점장이 표정을 굳혔다.
눈은 웃고 있으나 입꼬리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굳어버린, 바로 그 꼴이었다.
“…그 저택으로 가십니까?”
“가는 게 아니라 거기서 왔어.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중요한 분들이셨군요.”
말을 돌리는 점장을 집요하게 공격해 파고든 건 타이가였다.
그 태도의 근간은 탐구심이 절반이고 고약한 성격이 절반이었다.
말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기를 몇 회 반복하니, 점장은 못이긴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워낙에 나쁜 소문이 많은 곳이니까요.”
점장이 유리 공예품을 종이 포장지에 감싸 건네며 말했다.
“작곡가 나리타 케이스케는 들어보셨을 테지요.”
두 사람 모두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것도 오늘, 저택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저주받은 장송곡을 작곡한 예술가,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자, 평생을 불행 속에 살아온 남자, 동생에게 배신당한… 이 세상을 원망할 것이 분명한 가엾은 영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구시대의 인물이었으나 이 마을에 도착한 뒤로는 벌써 몇 번이나 언급된 바가 있었다.
유언장이 공개된 지금, 심지어 그의 악보는 불행의 씨앗이 되어 츠루바미 가문 깊이 묻혔다.
저주, 불행, 악의.
키워드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타이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저택이 본래 나리타 케이스케의 생가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그 집안 분들께 원한은 없습니다만, 개조도 없이 그 집을 사용하는 건 영 섬뜩하죠. 마치 누군가를 가두고 싶다는 의도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가업의 번창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산 채로 불태운다느니, 사람을 납치해 유리로 본을 뜬다느니 하는 말도…….”
점점 신빙성이 떨어지는 소문이 이어졌다.
아무리 폐쇄된 지역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면 경찰이 출동하지 않을 리 없었으므로.
타이가는 코웃음을 치고, 포장된 물건을 낚아채듯 가져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말해도, 글쎄. 직접 조사해보지.”
짧은 인사를 끝으로, 그들은 도로 비 오는 세상에 나왔다.
수위가 높아지는 강물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다리를 지나, 산길을 걸어 올라오는 길에 치후유가 물었다.
“진짜 조사하려고?”
“필요하다면.”
그렇게 대꾸하며 타이가는 저택 뒷문을 밀어 열었다.
사용인이 지키는 정문과 달리, 뒷문은 출입하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니… 좋게 말하자면 출입하기 쉽고, 나쁘게 말하자면 관리가 좀처럼 되지 않은 듯했다.
깨진 유리 조각이 쌓여 쓰레기 산을 이루고, 난간 위로는 철조망이 둥글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쪽이 지름길이라고 하지 않았나?”
“…함정은 없다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자연스레 조금 전 차남 코이치가 조언한 내용을 떠올렸다.
마을로 나가겠다고 하자, 그는 지름길과 뒷문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때 “웬만하면 닦인 길로만 다니는 편이 좋을걸.” 코이치는 그렇게 덧붙였다.
말마따나 사람이 많이 다녀 흙이 자라지 않는 길이 길고 얇게 한 줄 나 있었다.
“본래는 함정도 있었겠지.”
그러나 타이가는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훌쩍 뛰어 쓰레기 산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상대가 힘써 따라오든 말든 앞서간 그가, 쓰레기 산의 겉면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재활용도 하지 못할 만큼 오래된 유리 조각은 절단면이 유독 날카로웠다.
그리고 드문드문 섞인 예리한 쇳조각, 그리고 그 끝에 매달린 붉은 자국까지.
“뭐가?”
“나리타 케이스케의 생가라는 말, 믿을 만할 수도 있겠어.”
“…….”
“고대 피라미드나 다름 없는 꼴이군.”
타이가가 부서진 유리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건 사람의 얼굴처럼 굴곡지고, 눈코입과 귀, 인중, 이마 따위가 묘사된… 가면 파편이었다.
시선을 내리면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 손톱, 살결이나 근육을 묘사한 쓰레기도 눈에 띄었다.
그 모두, 얇은 유리판을 깨거나 부순 듯한 다른 조각과는 두께나 조형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예술품인 걸까.”
치후유의 추측에 타이가는 인상을 찌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 추측이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그의 추리보다 타인에의 대답이 빨랐다.
“츠루바미 가문은 이런 게 특기지. 신체를 나타낸 공예품이라고나 할까, 그중에서는 특히 가면이 유명해.”
“…너는?”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탐정님들.”
남자는 자신을 토요쿠라 타츠오라고 소개했다.
조금 전 유산 상속 자리에서도 함께한, 츠루바미 가문의 일원이었다.
정확히는 장녀인 츠루바미 에츠코의 연인으로… 아직은 가족이 아니었지만.
“좋은 걸 보여주지. 이리 따라와 봐.”
토요쿠라는 속도 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이끌었다.
장소는 뒷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소각장이었는데, 다가갈수록 묘한 악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이 냄새가 무엇인지 추측이 가능한 타이가는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건 사람의 피부가 타는 냄새였다.
자글자글한 소리마저 귓가에 꽂히는 것이, 장난 취급하기에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타이가는 생각했다.
“이게 좋은 거라고?”
“탐구심을 건드리지 않아? 나도 뭔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들, 무언가 수상한 것을 태우고 있어.” 토요쿠라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구경이나 하러 온 건데, 별 상황을 다 보는군.” 그렇게도 덧붙이는 그였다.
다만 이때, 머지 않아 낄낄 웃는 토요쿠라를 높고 또렷한 음성이 가로막았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타츠오.”
“에츠코!”
토요쿠라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당한 이는 그의 연인이자, 츠루바미 노보루의 장녀인 에츠코.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입가에 대고 에츠코가 뚜벅뚜벅 세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긴 부지깽이를 들어 소각로 입구를 꾹꾹 누르고는, 에츠코가 설명했다.
“실리콘이야. 동물의 피부 성분이 더해져 냄새만 이렇게 느껴지는 거지.”
“하지만 실리콘을 대체 왜……?”
“미나코라고, 내 조카가 있거든.”
에츠코와 토요쿠라의 문답에 탐정 두 사람도 귓속말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 녀석, 외동이 아니었나?
“…언뜻 들은 적 있는 것 같기도.”
하여간, 에츠코는 어깨를 으쓱였다.
“옛날에 큰 사고를 당했거든. 뭐, 말하자면 유리를 굽는 가마에 데였어.”
고통을 상상한 토요쿠라가 반사적으로 오만상을 지었다.
“그 이후 얼굴이나 몸이나 엉망진창이 되어서 말이야.”
여기서 데우는 건 피부 이식 시술을 하고 남은 찌꺼기일 뿐이라고, 에츠코가 설명을 마쳤다.
추가로, 그 사건으로 인해 미나코는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을 꺼린다나.
심플한 이야기를 마치고 떠나는 연인의 뒷모습을, 타이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타이가 씨.”
“…아무것도.”
타닥타닥. 투둑투둑.
인공 살갗이 타오르는 소리와 비 내리는 소리가 비슷한 리듬으로 들려왔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저택을 휘감은 불길한 기운이 그의 눈에는 보였다.
***
사람이 죽었다.
난생 처음 시신을 본 츠루바미 가 장남, 츠루바미 켄지가 크게 소리쳤다.
“으, 으아아악!”
그의 배우자나 동생이 헛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피해자는 츠루바미 노보루 밑에서 일하던, 기업의 부사장 테이시 타이조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은 그를 찾아보기 위해 가족과 손님, 사용인이 모두가 동원되었고, 결국 타이가가 저택 2층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방을 하나 발견했다. “이 방 문이 닫혀 있는데.” 그의 신호에 모두가 모였다. 그들은 잠긴 서재 문을 힘으로 연 뒤, 열린 베란다 문을 발견했다. 커텐과 빗물이 바람에 따라 실내로 거칠게 휘날렸다.
베란다 너머 실외, 화단과 마당 한구석에서 테이시 타이조는 발견되었다. 그 자리에 하필 철거되지 않은 함정이 있었다. 테이시는 그곳에서 떨어져서, 함정에 설치된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목 속 혈관이 정확히 베인 모양이었다.
빗물과 흙더미에 온몸이 축축하게 더러워진 시신의 상태가 2층 높이에서도 아주 잘 보였다.
“…사건이야.”
혼란에 빠진 이들 사이에서 나루에 치후유가 침착하게 선언했다.
이 사망이 자살일 수 없다는 것을 두 탐정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상속을 받지 못해서 비관했다거나?”
“벌써? 아니야. 식사 시간에 마저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었잖아.”
“…포기했을 수도 있지. 아버지는 고집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니까.”
“죽기 전에 대화 한번 하는 게 어려울까. 징조가 없었다고.”
벌벌 떨며 질문하는 츠루바미 에츠코에게 오오시로 타이가가 또박또박 답변했다.
“저주받은 거 아니야? 전설처럼…!”
“그럴 리가 있나.”
츠루바미 키리코의 질문도, 타이가는 피식 코웃음으로 넘겨버렸다.
어쨌든 사건을 정리하는 것은 탐정들의 몫이었다. 경찰이 찾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통신은 가능했으나 출동하기에는 비가 거셌다. 강을 건널 수도, 헬기를 띄울 수도 없었다.
타이가가 추측컨대, 비가 그치지 않으면 최대 이틀까지도 이 저택에 더 갇혀야 할 듯했다.
“내가 조금 도와줄까? 탐정님들.”
한 차례 탐문을 마친 뒤 현장을 자세히 살피는데, 토요쿠라 타츠오가 말을 걸어왔다.
“힘을 쓸 만한 사람들은 상태가 다 안 좋고, 둘만으로는 수습도 어려울 거 아니야.”
“사양하지. 남의 손길이 섞이면 오히려 곤란해.”
“…이런, 나는 동기도 없다고. 알잖아?”
“알리바이도 없지 않나. 지금은 누구나 덜컥 믿을 수 없어.”
당연한 거절이었다. 치후유도 타이가의 태도를 나무라지 않았다.
폐쇄된 장소. 잘 모르는 지방. 인물은 한정적이었다.
서로를 잘 아는 용의자들과 피해자, 탐정이야말로 외부인인 지금. 비록 나루에 치후유가 가족 중 한 사람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인연은 어느 날 한때에 불과했다. 온 가족이 비밀을 숨기고 탐정에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끈끈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신뢰 게임이다.’
타이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사람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테이시 타이조는 자살할 사람도 아니었고, 마땅히 원한을 산 인물도 아니었다.
평소 행실이나 금전이 얽힌 문제도 없었으며… 한마디로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죽었다면…….’
모두가 탐정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
누구나 덜컥 믿을 수 없다, 그게 오오시로 타이가의 입장이었다.
본래 그는 ‘엔자이(冤罪)’ 전문 탐정이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을 위해 진실을 소명하는 게 그의 특기였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의뢰인 중 정말 죄가 없는 사람은 많아봐야 절반이었다. 남은 반은 타이가에게 승부를 걸기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 ‘엔자이 전문 탐정이 믿어준다면 나는 무죄다.’ 범죄자의 머릿속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뻔히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남은 절반의 무고를 위해… 절반이라는 가능성을 위해 사건을 파헤쳤다.
즉 생각해 보자면 원리는 같았다. 수많은 용의자가 존재하는 이번 사건과, 억울한 사람이 존재하는 엔자이 사건은.
믿을 사람과 믿지 못할 사람을 사건 해결 이전에 가려낼 필요는 없었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면, 자연스레 신뢰해도 되는 대상이 밝혀질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거짓말을 한다.’
타이가는 생각을 바꾸었다.
함정을 파헤친 손끝이 흙과 핏물로 얼룩덜룩 더러웠다. 날카로운 것에 손을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깨진 가면, 깨진 손가락, 깨진 관자놀이와 엉망이 된 사람의 머리카락, 모든 게 함정 속에 뒤섞여 있었다.
양손을 편히 사용하기 위해 우산을 두고 나왔더니, 온몸이 축축하기도 했다.
오오시로 타이가는 침착하게 함정의 내용물을 살폈다.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어차피 누군가는 거짓말을 한다, 어차피 진실은 범인만이 아는 상황이다. 어차피 누구나 용의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 한 사람은 믿을 수 있잖아.’
타이가는 시선을 올려 나루에 치후유를 바라보았다.
발언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치후유가 목소리를 냈다.
“…계획 미스일지도.”
“계획 미스?”
타이가가 되물었다.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그가 아니었다… 라는 거지.”
“실수로 죽였다?”
“그래. 미리 설치해야 하는 종류의 트랩이었잖아? 타깃이 아닌 사람을 실수로 죽였을 확률도 있어.”
치후유의 추리에 타이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어.”
시신을 수습하면 이미 한밤중이었다.
저택 안 사람들은 방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기에, 탐문을 재개할 수도 없었다.
…내일 아침에 마저 이야기하기로 약속하고, 두 탐정도 헤어져야 할 타이밍이었다.
텅 빈 복도를 걸어 방으로 돌아가며 타이가는 치후유가 남긴 말을 한참 동안 혼자 곱씹었다.
‘실수로 죽은 사람.’
그렇다면 ‘실수가 아닌’ 두 번째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원한을 산 사람이 있다면… 누구지?’
후보는 많았다.
하지만 유력한 인물은 한 명이었다.
***
“거짓말! 어제 두 사람, 싸웠잖아!”
츠루바미 키리코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몰리는데도 망설이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키리코는 타이가와 방 안을 번갈아 손가락질했다.
“그게 원한이 되었던 거지? 내내 난폭하게 굴었던 것도 알아! 네가 삼촌을…!”
방 안, 천장에는 두 번째 시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츠루바미 코이치는 목이 푹 꺾인 채, 위층 베란다 난간에 목과 팔이 끈으로 묶인 상태로 발견되었다.
일반적인 살해 현장이 아니었다. 자살이라기에는 묘했고, 칼로 찌르거나 둔기로 급소를 가격하는 등 비교적 빠르고 쉬운 방법도 사용되지 않았다. 사정없이 꺾인 관절과 천장에 남은 검붉은 얼룩은 그야말로 ‘악보의 저주’ 같은 광경이었다.
공포에 질린 코이치의 표정은 촉박하기 짝이 없었던 범죄 현장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첫날 사건을 ‘저주’라고 주장하던 것과 달리, 키리코는 타이가를 지목했다.
“…그게 진짜라면, 수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어.”
키리코의 어머니, 레이카가 슬며시 다가와 딸의 손을 들어주었다.
순식간이었다. 키리코의 주장이 모두의 동조를 얻고 힘을 가지게 된 것은.
근거가 없다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츠루바미 가문의 사람들은, 키리코를 믿었다.
“원래 이런 상황에는 첫 번째 발견자가 가장 수상한 거, 알지?”
“연쇄 살인이 일어날 것 같아서 지키고 있었을 뿐이야.”
“그렇다면 왜 지키지 못했지? 결국 코이치는 죽었잖아!”
“…하.”
에츠코가 얼굴이 시뻘개져 악을 썼다.
데면데면해 보이던 사이와 달리 츠루바미 가족은 코이치의 죽음에 격렬히 반응했다.
에츠코의 지적에 타이가는 헛숨을 들이마실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기어코 양손을 들었다.
“뜻대로 해. 하지만 경찰이 온다면 법대로 진행하는 거다. 알았어?”
“…타이가 씨.”
이름을 불러오는 치후유를 보고, 타이가는 모두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다.
“나루에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
“그러니 다들, 녀석의 수사는 보장하도록.”
치후유는 츠루바미 키리코의 친구, 그리고 탐문 수사로 인해 알리바이도 있었다.
변호사인 후지무라도, 노보루의 며느리 레이카도 나루에의 알리바이 증명이 가능했다.
“…필요한 거 있어?”
“현장 수사부터 시작해. 그리고 알리바이 조사. 평소처럼 하면 돼.”
한마디를 남긴 타이가는 장남인 켄지의 손에 이끌려 2층 꼭대기 방으로 이동했다.
좁은 창문만이 천장 근처에 위치한 방은 필요 이상으로 보안이 철저했다.
마치 원래부터 이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처럼.
감시를 위해서 교대로 가족 구성원과 사용인이 들어와 문 앞을 지켰다.
그러나 다행히도, 감시자에는 가족 구성원도 사용인도 아닌 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나루에를 불러줘.”
변호사인 후지무라 히데유키에게, 타이가가 말을 걸었다.
한나절쯤 시간이 흘렀을까. 치후유는 조심스레 후지무라와 함께 방 안에 도착했다.
타이가는 방 가장 안쪽,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기 시간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조사 근황이나 확인하려고. …그리고 심심해.”
인사를 생략하고, 치후유가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조사 정보를 대략적으로 공유하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장은 기이했고 빗물은 주요 증거를 쓸어갔으며, 관계자들은 불친절했다. 쓸만한 정보가 나올 리 만무했다.
“그 녀석들, 엄청나게 깐깐하다고. 서로를 감싸는 분위기야.”
“그래? 가족이라 그런가.”
“다들 이 안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가족이 저질렀다고 자기들끼리 확신하는 게 분명해.”
치후유는 대답이 없었다.
타이가도 우습다고 생각했다. 의심하기 때문에 믿는다니, 그야말로 삐뚤어진 애정이었다.
이 비정상적인 신뢰 게임의 플레이어는 탐정과 범인 말고도 수없이 많았다.
“인연을 끊을 수 없으니까 감싸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
“그러니 관계 없는 외부인인 나를 내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타이가는 몇 시간 내내 속으로 정리한 추론을 펼쳤다.
하나. 이 집안 사람들의 관계에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둘. 모두가 범인이거나, 모두가 범인을 알고 있을 것이다.
셋. 그 악보는, 코이치에게 잘못 상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인 이야기를 나열한 타이가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봐, 나루에. 나는 아니야.”
“당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깔끔한 대답.
치후유가 시선을 들어 타이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나코 씨… 그러니까, 키리코의 언니를 봤어.”
“츠루바미 미나코?”
“그래, 2층에서. 화상 때문인지 몸을 다 가리고 있었는데… 부모님과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 같았어.”
타이가는 잠시 생각했다. 얼굴을 본 적 없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용의자에 관해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벽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높은 창 밖을 올려다보았다.
혼자서라면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발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협력자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바깥 창고에 긴 장대가 있더군.”
“…장대?”
“2미터 정도 되는 길이인데, 가을에 과일을 따는 용도라고 하던가.”
“…….”
“그걸 찾아서 응접실 방향 외벽에 놓아주면 좋겠는데.”
얼토당토 않는 요구를 당연스레 밀어붙이며, 그는 씨익 웃었다.
***
오오시로 타이가는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창문을 열었다.
요새고 감옥이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구시대의 산물이었다. 시설은 낡았고 손이 닿지 않는 자물쇠는 녹이 슬었다. 힘을 잃은 잠금은 타이가의 악력으로도 쉽게 열렸다. 그는 조용히 임시 감옥을 빠져나왔다.
나루에 치후유가 채 발견하지 못한 증거를 찾아내고, 츠루바미 미나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결정적인 증거는 저택 밖에 버렸을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그 녀석은 밖으로 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
기름이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 그는 2층 복도를 숨죽여 걸었다.
츠루바미 미나코의 방으로 추정되는 그 문 너머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가 더 움직이면 곤란해.”
“미나코가 범인이라는 것처럼 말하지 마! 그게 아니야, 나는… 미나코가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미안해. 레이카, 내 생각도 당신이랑 같아.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미나코도 노려질 수 있잖아. 이 애는… 그런 상황이면 도망가기도 어려울 테고.”
츠루바미 미나코와 키리코 자매의 부모, 켄지와 레이카의 대화였다.
타이가는 핸드폰 녹음을 떠올렸으나 곧 생각을 접었다. 이 정도 음량은 기계에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나코를 옮기려고 하고 있어.’
타이가는 차근차근 추리해보았다. 부모와 미나코가 이동한 장소가 미나코의 방이고, 여기가 미나코의 방인데, 부부 둘만 대화한다면. 아마도 딸을 약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재워둔 듯했다. 딸을 숨겨두기 위해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있고, 그 틈에 미나코의 의사는 전혀 끼어들지 못했다.
저벅저벅 가까이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복도 구석으로 몸을 숨기며, 그는 생각을 이어갔다.
‘순 제멋대로군.’
그러나 미나코의 행방을 알 수 있다면, 타이가로서는 환영이었다.
그는 조금 더 기다렸다. 천을 덮은 수레와 함께 부부는 방을 나섰다. 천조각의 실루엣이 꿈틀거리는 꼴이,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과연 은밀한 계획인지, 그들은 사용인 없이 남모르게 이동했다. 미행하는 타이가에게는 퍽 유리한 조건이었다.
켄지와 레이카는 계단을 내려오고, 저택 밖으로 나섰다. 타이가는 사람이 많을 1층으로 내려가는 대신 치후유가 설치한 장대를 이용해 탈출했다. 무사히 탈출하면 뒷문을 지나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르는 부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타이가는 잠자코 그들의 뒤를 밟았다. 츠루바미 소유의 뒷산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산짐승의 울음소리나 작은 동물이 움직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비가 내리는 소리가 잡음을 전부 가려주었을지도 모른다. 타이가는 거리를 두고 그 뒤를 쫓으며, 오르막길에 발을 디뎠다.
경사는 원만했으나 길이 전혀 닦이지 않아 문제였다. 켄지는 중간부터 수레를 버리고 미나코를 업었다. 레이카는 운동화를 신고도 발이 불편한지 괜히 몇 번이나 제자리에서 비틀거렸다. 그들이 등을 돌아보는 순간 타이가는 존재를 들킬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굴다니.’
뚜둑.
타이가의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서졌다.
“…여보!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켄지의 외침에 타이가는 황급히 바위 뒤로 납작하게 엎드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쓴 부부와 달리 타이가는 일상복 차림이었다. 잡스러운 비닐 소리 따위 들리지 않았다.
레이카가 등 뒤를 돌아보더니, 이마를 적신 빗물을 닦고 켄지에게 대꾸했다.
“동물 소리였나 봐.”
“그런가… 거의 다 왔어. 당신도 빨리 와.”
그들이 도착한 건 산속의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시멘트로 지어진 일 층짜리 건물. 겉모습에 따르면 폐가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켄지와 레이카가 안쪽에 수레를 놓고 나오는 데 십 분 가량 시간이 흘렀다.
철컥. 밖으로 나오며 두 사람이 열쇠로 문을 잠갔다.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올라오는 속도보다 빨랐다.
그로부터 십 분쯤 시간이 더 흘러, 타이가는 건물 가까이 접근했다.
밖에서 알 만한 진실은 전무했으며, 마당이 없는 건물이라 안으로 진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발밑에 채이는 돌덩이를 집어 철제 문고리를 짓이겼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산속을 울리고, 건물 실내외를 요란하게 울렸다.
‘보안 장치가 없다면 됐어.’
장갑을 버린 탓에 손바닥이 무방비했다. 들고 있던 돌을 문틈에 끼워 문을 열어두고, 불그스름한 손을 젖은 바지에 문지르며 그는 실내로 들어섰다. 조명이 들지 않는 실내는 조금 전의 감옥보다도 형편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딸을 숨기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한구석에 놓인 흰 덩어리에서 천을 끌어내려 미나코의 얼굴과 정체를 확인한 뒤, 타이가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드물게 들리는 미나코의 콜록거리는 소리가 그를 조급하게 했다.
그는 실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사방의 유리 쓰레기, 웃고 우는 가면, 먼지, 그리고 나무 합판에 새겨진 격언. ‘죽음이 나의 곁에 있다.’ 벽면에 검은 물감으로 그려진 기괴한 그림. 사람 얼굴을 가두고 있는 네모난 벽이 돋보이는 그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림 옆에는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빼곡했다. 건물 한쪽 벽에는 오물이 묻어 있고, 다른 벽은 열에 우그러진 것이 마치… 타다 남은 건물 같았다.
또한 건물 중앙에 놓인 유리 굽는 가마가 건물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뿌연 먼지로 뒤덮인 것을 보면, 현재는 이용하지 않을 성싶었다. 누가 봐도 이곳은 아주 오래 전, 산속에 버려진 장소였다.
‘…아니야.’
타이가는 가마 속의 잿더미를 맨손으로 긁어냈다.
유리 조각에 피부가 따끔거렸는데, 드문드문 둥근 유리도 잡혔다.
오래 전에는 이 가마에서 공예품을 구워내기도 한 듯했다. 그리고…….
‘최근에 불이 켜진 흔적이 있어.’
그가 손에 잡힌 물건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붉은 천조각과 역시 붉은 자국이 군데군데 남은 밧줄 뭉치.
츠루바미 가문이 은폐하려던 증거품이 틀림없었다.
‘그래, 드디어 찾았다.’
그는 천과 밧줄을 안주머니에 챙겨들고, 잠에 취한 미나코를 옆으로 밀었다.
미나코가 움직이며, 천에 둘둘 말린 고무줄과 단면이 거친 나무토막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사건을 하나로 묶을 만한 증거품이었다.
타이가는 키리코와 아주 닮은 –그러나 화상 흉터가 눈에 띄는– 미나코의 맨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이봐, 츠루바미 미나코. 일어나.”
“…! 누, 누구야, 당신?”
“오오시로 타이가. 네 동생의 친구의 친구. 탐정으로서 방문했다.”
화들짝 놀라는 미나코에게 타이가는 증거를 들어 보여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앞선 두 건의 살인, 테이시 타이조와 츠루바미 코이치.”
“…무슨 말이야? 여기는 어디고?”
“내가 데려온 게 아니야. 네 부모지. 질문에나 답해. 네가 죽였지?”
타이가는 혼란에 빠진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과 몸을 가리는 천이 사라져서, 낯선 장소에서 깨어나서, 낯선 사람을 만나서, 범죄를 추궁당해서.
미나코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사유는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래, 그러면 차근차근 대화해보도록 할까.”
타이가는 상체를 일으키며, 여전히 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증거가 손에 들어온 이상, 미나코와 대면한 이상. 승산은 있었다.
***
“그 악보, 미나코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
“츠루바미 미나코가 직접 말했으니까. 자신에게 왔어야 하는 물건이라고.”
그날, 몸을 숨긴 타이가에게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토요쿠라 타츠오의 핸드폰이라고, 나루에 치후유는 사실을 밝히며 그 사이 일어난 일을 요약해 전했다. 한 건의 살인이 발생했으며 저택이 발칵 뒤집혔고, 자신마저 의심을 받는 데다가, 키리코와도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치후유는 침착한 태도로 전했다.
타이가는 전화를 받으며 울다 지쳐 잠든 미나코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미나코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으나, 사실 기분보다는 트라우마와 건강 상태가 더 말썽이었다.
통화를 마무리하며 타이가가 조언했다.
“나루에, 마침 비가 오니까. 물이 빠지는 곳을 잘 살펴보도록.”
“물이 빠지는 곳… 알겠어.”
“해가 뜨면 봐.”
“…비 그치고 만나.”
유리가 한가득한 폐가.
주변을 둘러보며, 오오시로 타이가는 인상을 찌푸렸다.
범인이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투명한 것을… 모두 숨기고자 했을 뿐이다.
망가진 가면이 망가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숨은 것은 없고, 덧대어진 감정만이 존재했다. 애정도 신뢰도 아닌 무엇이었다.
***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츠루바미 미나코였다.
마지막 사건의 범인은 그 동생, 츠루바미 키리코였고.
그는 미나코에게 돌아갈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토요쿠라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다들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나를 혼자 뒀으니까, 내게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도 괜찮아지지 않았어. 그래봤자 내 속의 분노는 점점 커지기만 했지. 그래도 그 긴 시간의 보상을 받으면, 그러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는 건 없었어. 이 사람들이 먼저 나를 배신했어! 그래, 믿었던 내가 멍청했던 거야…….”
미나코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무릎을 꿇은 켄지와 레이카, 혼절할 듯 우는 키리코.
키리코는 심지어 나루에 치후유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너는 이해도 못 하겠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언니야!”
“…….”
“끔찍해…… 정말.”
저주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반면 표정이 좋지 않은 생존자들과 달리 한 사람 평화로운 이가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발단일 츠루바미 노보루가 코웃음을 쳤다.
“그건 내 몫의 계산이 아니라서.”
사용인이 내온 찻잔을 들어올리는 노보루의 손을, 오오시로 타이가가 탁 소리가 나게 쳐냈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찻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노보루보다 크게 놀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미나코였다. 그는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된 그때보다 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중얼거렸다.
“어째서…….”
“좋아서 한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않길 바라지.”
타이가는 미나코에게, 그리고 노보루에게 말했다.
“마셨으면 죽었어.”
사건이 종료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게 틀림없었다.
숨기고자 한 것도 가리고자 한 것도 세상에 드러나버렸기 때문에.
유리는 깨지고 저주는 남았다. 사람은 세 명이나 죽었다. 그들은 불행했다.
기차역에 설 때마다 안내방송으로 들리는 클래식 멜로디에, 오오시로 타이가는 눈을 떴다.
구름이 껴 어둑어둑한 창밖이 시야에 들어왔다.
“먹구름이 도쿄로 내려가고 있군.”
“또 비야… 이제 비는 질색이야.”
내내 깨어 있었는지, 혼잣말이었음에도 나루에 치후유가 대답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약간의 침묵 끝에 치후유가 운을 떼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화내진 않았네.”
“흥. 화가 나지 않았을 리 없잖아.”
“…그렇구나.”
“절망하지 않았을 뿐이다. 네 도움이 있었으니까.”
그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대꾸했다.
따끔거리는 손바닥에 아오모리의 유리 공예품이 잡혔다.
매끌매끌한 표면, 둥근 곡선, 투명하지만 색으로 물든 것. 기념품.
오오시로 타이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얻어가는 것도 없지 않았고.
억울한 사람도 남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은 아주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